더러운 세상, 한심한 사람들

옛날 옛적에 애인이 썼던 글이다. 그자는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그자가 썼던 글을 가능한 한 전부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고 가장 아껴읽고 되뇌이고 그러다가 가끔 또 찾아 읽는 글을 올려봄~ 글에 있던 링크는 삭제함 링크가 깨지기도 했고..


더러운 세상, 한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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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랑 얘기를 하다가 글은 쓴 사람에게 미우나 고우나 자식 같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 역시 자식 사랑이 유별난 편인데 어디가서 우리 애가 맞고 오거나 왕따를 당하고 있으면 참 기분이 우울해진다. 여튼저튼 그 자식 같은 글들 중 고등학교 때나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즈음에 쓴 글들을 보면 다른 사람이 쓴 거였다면 가볍게 비웃고 말겠지만 내가 썼다는 점에서 참 참망한 기분이 든다. 인간 말종이나 살인마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심정을 감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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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경험이 일천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주요 투쟁 현장을 순회하며 옹알이를 하면서 발언을 준비하며 자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란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업계에서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초주의자, 파시스트(혹은 자유주의자)생활을 하다가 변절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사람 개개인이 선천적으로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억압자들의 이데올로기이고 피지배 계급들은 의식이 형성하는 시기부터 이 영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 어릴 때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 공장 노동자 신세를 면한다는 것을 인생의 신조로 배워왔고 신문에서 이런 불황기에/호황기에/홍수에/가뭄에/월드컵에 파업은 무슨 놈의 파업이냐는 논설을 읽으며 글을 배웠으며 포르노와 음담패설과 함께 이성에 눈을 떴다. 학교에서 언론에서 일상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이 이데올로기의 압력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들이 후진적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배당하고 억압당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고 억압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 계급의 후진적 정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식은 피지배 계급이 일상적으로 발 딛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피억압자들은 가끔 이 의식과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게 되고 투쟁에 나서게 되며 그 행동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수정하고 연대의 경험을 통해 다른 피억압자의 상황을 공감하며 점점 지배적 이데올로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사실 탈출하려고 늪에서 버둥버둥 거리고 있는 게 솔직한 모습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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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올바르지도 선량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것은 대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이며 그야말로 관념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주목해야는 것은 세상은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이고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일반적이고 평범한 풍경들이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지만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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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글을 쓰던 훌륭한 사람이...ㅜㅜ 지금도 지금 나름 훌륭하지만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매력이 급감소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글을 쓰지 않으니 또 애정이 식었어 드립 몇 번 날려야겠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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