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오 모토(萩尾 望都)

앗참 이 글에는 줄거리를 결말까지 다 적어놨으셈. 알고 읽어도 상관없는 작품들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정애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은 기사를 읽고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를 사다 읽었었다.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이안이 제르미의 심장을 썰고 있다...

 

17권을 하루종일 읽고 뻗었었다. 만화를 읽고 몸을 추스르지 못해서 밥도 못 먹은 건 처음이었다. 기운을 차리고, 밥을 먹고, 밤새도록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가슴을 쥐어뜯고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울다지쳐-_- 잠든 진짜 유일한 만화다.

 

'꽃의 24년조'라고 소화 24년(1949년)을 전후해 태어난 여성만화가들을 일컫는 전문용어가 있다.(자세한 내용과 하기오 모토 선생에 대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 야오이가 의미없음을 일컫는 용어라면 하기오 모토 선생은 전혀 야오이 작가가 아니다. 근데 야오이 초창기 멤버신데 왜 야오이라고 규정이 되었을까? 초장(?)부터 야오이 개념을 박살내시며 혜성처럼 등장하셨다...고 말해봐야 초반 작품 못봤다-_-;;;

화려한 네임밸류만큼 작품들이 끝장난다...라고 해봐야 두 작품밖에 못 봤지만.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는 예이츠가 어디서 말한 건데.. 으음.. 역시 기억 안 나고 뭐랄까 이런 것이 명작이구나, 그리고 일본만화의 힘이구나하고 느꼈다.

 

줄거리를 대강 요약하면 엄마의 재혼상대(그렉)에게 엄마를 위해 성폭행을 당하는 소년 제르미의 자아가 파괴되는 이야기랄 수 있겠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아들은 모자관계에 친구이며 연인 이상의 모든 것을 둘만이 공유하는 관계이다. 게다가 엄마는 약해 빠져서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며 제르미를 겁줘 제르미를 자신의 소유물로 옭아맨다. 엄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폭행을 감내하던 제르미는 양부의 차에 조작을 가해 양부를 죽이게 되지만, 예정에 없이 같이 차를 탄 엄마마저 죽는 바람에 모친살해의 죄악감으로 자신을 파괴해나간다. 이런 사정을 알게된 양부의 아들 이안은 제르미에게 손을 뻗지만 이미 늦었다. 제르미가 살인을 고백했을 때 성폭행과 살인은 너의 환상이라며 자기 아버지의 견실한 환상을 지켜내기 위해 제르미의 고백을 부정한 것이 오히려 제르미에게는 존재를 거부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한 번 거부 당한 제르미의 영혼이 찢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아아 줄거리만 요약해도 괴롭다. 만화를 보면 진짜 괴롭다. 어떻게 성폭행을 당하는지, 어떻게 괴로워하는지 너무 자세히 나와서. 전반적인 구성상 특이하게 느낀 것이 보통은 성폭행을 당해서 죽여 버리고 괴로워하며 끝나거나 살인의 죄악감을 갖고 살아가는 자의 괴로움을 어정쩡하게 보여주는 게 대충의 공식(?)이라고 생각되는데 양자를 다 담으면서 무척 꼼꼼하게 묘사한다. 특히 심리묘사를 분위기로 묘하게 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제르미의 의식상태를 보여주니까 으에에 보는 사람이 이렇게 괴로우면 도대체 그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그린 건지.

 

이안은 "사랑하는 것밖에는 제르미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다"며 여친 나디아를 버리고 제르미를 위해 헌신하지만, 자신 아버지의 망령에 휩싸인 것은 제르미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조언자는 서로 갉아먹을 뿐이라며 제르미에게서 떨어지라고 계속 얘기하지만, 제르미를 한 번 내친데 대한 죄책감과, 내 아버지가 행한 짓에 대한 죄책감과, 절망에 빠진 제르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이 마음과, 제르미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욕정과, 사랑하는 마음과, 옭아매고 싶은 이 소유욕과, 아버지를 죽인데 대한 증오감까지...(이건 결국에는 희석되지만) 참아내지 못하겠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르미를 폭행하던 그렉도 제르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르미에게 사랑은 육체의 욕망에 불과하고 추한 것이다. 그럼 나는 육체뿐인 인간이라는 거냐!라며 반박하는 이안에게 자신은 이안처럼 할 수 없다고. 아흐 슬퍼ㅠ_ㅜ

제르미가 슬프게 말한다. 살인자라도 사랑할 수 있을까... 제르미가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 크리스마스 며칠전부터 정월까지의 기간에 이안과 제르미가 고통의 축제를 함께 하는 것으로 만화가 끝난다. 평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건가. 점점 희미해져서 어느날엔가는 잊을 수 있는 걸까. 조각날 것 같은 나를 기워서 꽁꽁 싸매서 간신히 살아내야 하는 절망이 끝날 날이 올까?

 

만화에는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온다. 부모의 상처가 미치는 영향이나 아이는 부모의 종속물인가같은 얘기. 아악 요약이 안 돼ㅠ_ㅜ

 

이안은 나랑 좀 비슷하다. 제르미가 너는 이해 못 해.라고 말하는데 밖에서보는 나는 대부분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제르미를 이해할 것만 같지만, 이안처럼 안에 있을 때는 역시 이해를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해하고 싶어 죽겠는 걸~까지 비슷하다-_-

 

전화로 제르미가 이안에게 "내 머리속에는 이안이 살고 있어. 싫지는 않지만 슬퍼"라고 말하는 부분이 최고 가슴 찢어짐. 달콤한 사랑의 밀어. 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이북스에서 애장판으로 9권으로 냈다. 도대체 왜!!! 판권을 사서 번역해서 내지 않는 거야, 왜!!!! 이 좋은 작품을. 선생의 작품은 한국에 정식 번역된 것이 한 권도 없다.

 

잔혹신 일러스트집

 

마지널

키라의 얼굴>_<

 

일본 만화를 보면 '구원'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그린 히와타리 사키의 경우 <미래의 전각> 등 다른 작품을 봐도 굉장히 건강한 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흡사해서 구원은 신이 하든 자신이 하든 구원되면 끝이다. 아싸 구원받았다 신난다로 끝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만화에서의 구원은, 종국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파국을 조금 지연해주는 것이며 그것이 어떤 것이든 끝은 오고야 만다는 강한 절망으로 보인다.

 

<마지널MARGINAL>은 제목처럼 불모의 땅이 된 서력 2999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 시점에서 예상가능한 바 부자들은 이미 지구를 떠났고, 지구의 회생가능성 여부를 살펴보려는 거대 기업의 프로젝트로 지구의 몇 개 지구에서는 그런 부자들의 존재를 모르는 원시적 삶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라는 것이 "여자"가 없는 세상이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세계에서 컴퍼니에 의해 통제된 이 사회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모두의 '어머니(마더)'가 한 분 계시고, 그 분은 육체를 갈아입으며 죽지 않고 그들 중 일인으로 환생하여 끊임없이 아들을 낳아주시는 성스러운 분이다. 컴퍼니에 의해 마더로 간택된 남자는 수술을 당해 여성의 육체를 갖게 되고 세뇌를 당해 현실의 기억을 잊고 오로지 잠만 자며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종교의 환상을 유지하는데에만 이용당한다. 세상 모든 남자는 모두 마더의 아들들이다.

 

주인공은 아시진, 키라, 그린쟈. 아시진은 죽지않는남자라는 별명이 어울리게 생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그린쟈는 줄어드는 출생자 수에 세상의 끝을 예감하며 마더를 살해한다. 이 극단의 두 남자 가운데에 위치한 키라는 지구라는 거대한 자궁을 회생시킬 목적으로  한 과학자가 만든 초능력자로 수태능력이 있다. 아시진과 그린쟈의 영향을 받으며 키라는 지구를 회생시키는 죽음 아닌 죽음을 맞게 된다.

 

결말에서 키라와 정신의 일체를 이루는 쌍둥이가 돌아와서 셋이 같이 살게 되는데, 키라는 지구와 함께 숨쉬는 생명의 근원이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마지널-불모의 땅을 종식시키는 구원이다. 구원은 생(아시진)과 사(그린쟈) 한가운데에 있으며 키라가 그린쟈에게 끌리듯이 죽음 쪽에 더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원은 찬란한 생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라는 용서가 아니다. 파국도 종말도 지연시킬 수는 있으되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만화에서 별로 그런 얘기를 한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ㅅ-

 

5권의 이야기에 꽉꽉 무척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반드시(?) 정독을...

대여점에 있을 것인가는 장담 못한다. 해적판이고 인기도 없었으므로...-ㅅ-

 

 

하기오 모또 센세. 예전에 웹써핑하다가 보고는 낼름 저장해 놓은 사진.

 

줄거리를 요약하면 많은 것을 떼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싫어하지만 이렇게 줄거리를 요약해 보았다. 부디 이 글을 읽은 분들이 하기오 모또님의 만화를 보는 영광을 누리시길 바라며...

글고 이따구로 간단히 적을 작품들은 아니고 난중에 절라 공부해서 열라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남으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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