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트릉카 작품집

일요일(3/8)에 숭당과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 또갔다.


 

하하 이 작품 진짜 웃기다. 말이 최고여!!

 

 

체코 애니메이션의 아빠-ㅅ- 이지 트릉카아~

역시 한국에 디비디같은 건 안 나온 듯 하고 상영해 준 건 외국제로 다행히 모든 작품이 대사가 없었다.

중간에 트릉카가 미술 감독하고 포야르가 감독한 오로바이 애니는 대사가 무척 많았지만..-_-

 

인형은 동선이 절제될 수밖에 없다. 원래 태생적 제한을 승화(?)시켜 다른 차원으로 갖다놔 버리는 게 예술이 아닌가라고 지금 지어서 생각해본다.

 

대사없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고. 유머 감각도 내 코드에 맞고~

그랬다-_-

 

 

<손The Hand>이 아주 인상깊었는데, 아니 컷아웃 기법에 이토 준지를 연상시키던 <써커스>나 맨 위 사진의 애니도 좋았고 그.. 베이스첼로 연주자와 깜짝누드쇼-_-도 너무 재미있었으니 다 인상적이었긴 하다.

 

꽃을 가꾸며 조용히 살아가는 예술가에게 거대한 흰 손(타이즈를 입은 진짜 사람 손)이 찾아와

저 사진 모양의 손을 만들 것을 강요한다. 계속 거부하자 저기에 가두고 일을 시키는 무서운 내용이다. 결말은 비밀♡

 

손=독재자

손=이지트릉카라는 애니메이터

손=예술가의 무기

 

음.. 무기는 별로.. 다른 단어 없으려나??

손에 대한 다양한 은유로 점철되었으면서 파시스트에 대한 문제제기가 뚜렷한 작품이었다. 체코의 시대상황은 잘 모르지만 훌륭한-_- 사람인 듯. 소피의 반란도 생각나공.

작품 내의 전지전능한 창조자로써 본인은 거대한 손이며 그 손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예술가이며.. 아아 너무 멋있어..;;

 

이제 딴 얘기.

애니 만드는 한 기법(로토스코핑)에 대해 읽었는데 너무 놀랍다. 지난 번 감상문에서 사진을 눙쳤다고 표현했던 건데-_- 실사를 찍어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건데 한 컷 한 컷 작가가 다 한다. 3분 길이에 1천 장 정도 그린다고.. 작가주의와 장인 정신. 장인 정신은 상업적인 프로 개념에 더 가까운데 두 개 합치니까 멋지구나-_-d

 

작품집 마지막에 실린 이지 트릉카에 대한 다큐에서도 왼손으로 쓱쓱 열심히 배경을 만들고 인형을 조물거리는 모습이 생소한 감동을 주었다. 왜, 그 정도 위치면 제자한테 막 시키고 그럴 것 같은데.

 

나도 돈 벌면 다 사야지. 다 사서 사람들하고 나눠 봐야지>_<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부하게 관찰되는 인형극(puppet play) 문화는 주로 유럽의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식과 풍부한 양식적 전통 위에서 발달해 왔다. 그 중 특히 300년 이상의 인형극 역사와 함께 진흙 인형 골렘의 유명한 카발라적 전설까지 보유한 체코는 오늘날 ‘인형 예술의 메카’라고까지 일컬어질 만큼 세계적인 인형 영화의 중심지로서 인식되고 있다. 체코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인형 영화의 거장 이지 트릉카의 선구자적 실천작업과 영화예술적 성과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인형극의 전통 위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척해 나간 그는 멘델스존식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빛과 렌즈의 시대에 부활한 제페토이며, 전세계 인형 영화작가들의 스승으로서 존경받는 20세기의 피그말리온이다. 물론 트릉카 이전에도 유럽에는 라디슬라프 스타레비치와 조지 팰, 알렉산더 프투쉬코 등 뛰어난 작가들이 있었지만, 트릉카와 월트 디즈니의 잦은 비교는 인형영화계에서 그가 점유하는 비중을 얼마간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그것은 두 사람의 영화예술적 경향이 결코 유사해서가 아니라, 트릉카가 전력했던 인형 영화의 대중화 작업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그의 예술적 영향력이 디즈니의 그것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부친이 배관공이고 모친과 조모가 인형 제작자였던 이지 트릉카는 1912년 보헤미아의 필센 근교에서 태어났다. 프라하의 기술대학 졸업후 근대 인형극의 확립자인 요제프 스쿠파(Joseph Scupa)의 극단에서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그는 인형극의 예술과 제작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한편, 대학시절부터 해왔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재능을 발휘
하여 트릉카의 그림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차 대전 발발 전에 인형극단인‘나무 극단(Tree Theatre)’을 설립하였으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하며, 그러다가 종전 후 나
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체코의 영화산업이 정부 경영하로 넘어가게 되면서 트릉카는 프라하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중략)

63년 체코의 인민예술가로 선정된 트릉카는 68년 소련의 체코 침공 이후 영화제작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오랜 암투병 끝에 69년 12월 30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제자였던 브제티슬라프 포야르와 카와모토 키하치로 외 다수의 작가들이 이미 그의 뒤를 잇는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거장이 되었으며, 그가 세운 스튜디오는 오늘도 많은 인형 영화작가들이 그들의 피조물과 교감할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


출처 : 애니료의 애니메이션 까펭. 애니료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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