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동몽

SF팬들을 경악 시킨 만화 『동몽』

 

오오토모 가츠히로. 세계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발견한 것은, 『공각기동대』가 처음이 아니다. 애니메이터는 물론이고, 수많은 영화감독과 작가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일본 애니메이션은 바로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였다. 88년에 만들어진 『아키라』는 일본에서 흥행에 실패했지만(그것은 『공각기동대』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인정을 받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공각기동대』가 더해져, 오오토모 가츠히로와 오시이 마모루는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주로 디즈니 계열의 애니메이터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폭넓은 호응을 얻는 것에 비해, 오오토모 가츠히로와 오시이 마모루는 열광적인 마니아들에게 더욱 인정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된 것은 82년. 같은 해에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도 연재를 시작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아키라』는 일본 만화계에 충격을 던져줬고, 이후의 SF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두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원작이 너무나 방대하여 전체 내용을 담지 못하고 전반부의 내용만을 각색한 것도 동일하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국민감독으로 자리잡은 것에 비하여, 오오토모 가츠히로는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쫓고 있었다.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인 『메모리즈』에서 단 한 컷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는 실험적인 단편 『대포도시』를 발표한 후, 오오토모 가츠히로는 『스프리건』과 『메트로폴리스』 등의 작품에 관여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신작 『스팀보이』는 올 여름 일본에서 개봉했고,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출품되었다. 『스팀보이』는 『아키라』와 『메모리즈』에 비하여 훨씬 쉬워졌고, 동심과 순수의 기운이 한껏 살아있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다.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사이버펑크 스타일 SF에 열광했다면, 약간 맥이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오오토모 가츠히로는 일본 SF만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82년 『아키라』가 연재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드라마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83년 비쥬얼계 SF잡지에서 『동몽』이 연재되고, 1권짜리 장편으로 단행본이 출간되었을 때 SF팬들은 경악했다. 이전까지 SF는 소년만화가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편견을 한번에 박살내버린 것이다. SF 만화에는 언제나 멋있는 영웅, 아름다운 여성 주인공, 독특한 메카닉이 등장하고 하나의 국가규모를 충분히 뛰어넘는 거대한 악당 집단의 음모가 어우러지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동몽』은 그런 공식을 몽땅 뒤엎어버렸다. 주인공은 미소녀라 할 수 없는 어린 소녀이고, 악당은 아이같은 천진한 미소를 짓는 독거노인이다. 게다가 무대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 일본에서 ‘단지’라고 불리는 장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진 비인간적이고 단절적인 집단공간이다. 그 안에서는 기존의 도덕이나 질서 같은 것은 소용이 없다. 일본의 소설과 영화에서, ‘단지’는 가축들의 축사나 기계나 도구의 정리함 같은 느낌으로 그려졌다. 인간들의 욕망이 일그러지는 기묘한 장소. 『동몽』은 그 일상적인 장소에서, 평범해보이는 주인공들에게서, 거대한 스펙터클을 이끌어낸다. 소재 자체로는 분명 마이너한 작품이었지만 오오토모 가츠히로는 세밀한 스토리와 박력 있는 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단숨에 메이저로 올라갔다.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아키라』 제작위원회에서 열성적으로 일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동몽』은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으로 시작된다. 20명이 넘게 죽어가는 동안, 경찰은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한다. 형사부장인 야마카와마저 죽은 후, 무당을 찾아간 형사는 ‘아이를 조심해’라는 말만 듣게 된다. 하지만 범인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정신을 가진 노인이었다. 혼자 사는 쵸우 노인은 별다른 악의가 없지만, 한없이 잔인한 아이들의 장난처럼 단지 내의 사람들을 초능력으로 죽여간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에츠코란 이름의 소녀.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힐난하는 에츠코를 무서워하는 쵸우 노인은, 에츠코를 죽이기 위해 타인들을 조종한다. 『동몽』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모든 사건은 단지라는 좁은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초반이 지나면서, 『동몽』의 스토리는 급전개되고 독자를 빨아들인다.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재능은 『아키라』같은 거대한 스토리에서도 발휘되지만, 무엇보다 ‘그림’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오오토모의 그림은 사실적인 화풍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극화와 비슷하지만,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과잉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테면 『동몽』은 초능력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사건의 정황이나 심리, 초능력의 묘사는 캐릭터와 배경이라는 최소한의 그림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SF만화에 늘 등장하는 전기 스파크나 몸 위로 치솟아오르는 화염, 레이저광선 등의 기호화된 표현방법도 전혀 없다. 그런 일상적인 오프톤의 터치가 일상에서 벌어지는 초능력 살인의 긴박감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쵸우 노인과 에츠코의 전투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액션이 벌어지는 광경은 흔히 롱 쇼트로 그려진다.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시점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동몽』은 벽의 붕괴부터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까지 관객이 현실에서 상상하는 모습 그대로를 묘사하고, 기호화된 초능력 전투를 배제하여 마치 뉴스영상을 보는 것처럼 일종의 정보로서 그림을 그려간다. 『동몽』은 ‘리얼한 그림을 사용하여, 그림 특유의 정보의 가능성을 재구축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동몽』은 『아키라』보다 훨씬 단순하고, 함축적이다. 『아키라』의 거대하고도 세밀한 세계관을 기대한다면 미치지 못하겠지만, 『동몽』 그 자체의 가치는 『아키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원초적인 세계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동몽』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글/김봉석(문화평론가)

출처는 아마도 yes24... 원페이지는 못 찾겠다. 작품마다 예스24의 상품구매페이지로 링크가 되어 있었는데 다 지웠..으니 거기 출처가 맞겠지;; 노랑색 강조는 나. 완전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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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퍼왔다.

또또 만났을 때 북새통 서점에서 1500원에 팔길래 살까말까 열라 고민했는데, 해적판이라서 고민한 건데, 내가 해적판을 정말 완전완전 싫어하니까. [[번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읽을거리가 없어서 샀다. 또또에게도 선물 - 완전 좋다고 했다.

나도 정말이지 완전 좋아서 전철 내려서 집에 오는 길에 완전 행복해서 아아 이 사람이 이런 걸 해 줬으니 나는 가만히 살다 죽어도 좋다 싶었다. 만화 연출이란 이런 건가 싶다. 간간이 영화처럼 쓸데없는 호흡, 아니 호흡 자체가 쓸데없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방식이 구태의연한 그런 것도 보였는데 이거 꽤나 옛날 작품이니까, 나랑 갭이 있어서 그럴지도. 그런 장면을 진부하다고 말해 버려도 전혀 작품을 깎아내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훌륭하다. 내가 살면서 이런 만화를 보다니 여태 몰랐다니 아키라는 왜 한국에 정식출판이 안 되는 건지 위엣 글 읽고 만화영화는 만화책의 앞부분의 내용일 뿐이란 거 알고 또 한번 광분 뭐야 이 사람 뭐야아아아 영화가 제목이 아키란데 아키라 뭐했냐 싶은 생각도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라는 길고 이상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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