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봉 울다

  • 등록일
    2005/07/11 14:23
  • 수정일
    2005/07/11 14:23
  • 분류
    우울한일기

초딩 3, 4학년은 반이 고대로 올라가서 친구가 다 같았기 때문에 그 2년간 일어난 일은 어느 쪽에 속하는지 헛갈린다.

아무튼 그 2년 중 한 해에 나는 아빠가 보던 야한 비디오가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니(몽땅 여자) 다들 보고 싶어해서 방과 후 다같이 우리집에 같다.

한 7, 8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영화를 맨처음으로 감지 않고 그냥 틀었는데 당시 한지붕 세가족에 만수 아빠로 출연하던 최주봉 씨가 하얀 팬티만 입고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막 흰 천이 날리고 팬티만 입은 언니가 울었던가, 아무튼 누워 있었다.

 

몇 명은 참지 못 하고 내 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영화를 보기 싫었지만 약한 모습=ㅅ= 보이기 싫어서 할 수 없이 보던 차에 걔네들을 달래러 따라갔다. 그 중에 눈이 크고 무척 예뻤던 애가 기억나는군...-_-; 암튼 걔네들은 울었다=_= 울면서 쟤네들도 그만 보라고 해... 그러면서 울었다.

 

나는 안방에 가서 야 그만 보자 그러는데 두명인가 세명이 끝까지 보겠다고 했다. 그 열 살 아니면 열 한 살인 여자애들이 왜 울었는지 그게 이상하다. 뭘 알고 뭘 느낀 건지 지금 나로선 모르겠다.

 

울었다고 하니까 또 생각난다. 그러고보니 그 때 나쁜 짓도 많이 하고... 그랬구나 정말로. 3, 4학년 때 나쁜 짓을 제일 많이 했다. 도둑질도 하고-_-.

 

생일파티에 갔는데 한 열 명 넘었던 것 같고 역시 또 여자애들만 있었는데 누군가 술을 마실 줄 안다고 했다. 나는 손에서 피가 났을 때 소주에 손가락을 담군 적이 있는데 그래도 먹지도 않았는데 먹을 줄 안다고 또 뻥을 쳤다. 그랬더니 정말로 사다가 마시자고 했다-_-

 

그 동네가 우리 엄마 가게 하던 동네라 슈퍼 아줌마랑 내가 아는 사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맥주를 사올 인간으로 파견되었다. 아줌마가 "엄마가 사오라고 했니"라고 묻는데 끄악 되게 두려웠다. 엄마한테 물어보면 어쩌지... 그래도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서 사서 뱃속에 감춰서 친구네 들어갔다.

 

우리는 일단 문을 잠구고 글라스에 따라서 한 입씩 돌아가며 마시는데 생일의 주인공이며 최주봉 보고 운 애 중에 한 명인 애가 울기 시작했다. -_- 야 울지 마 왜 그래 그러는데 나는 입안에 있는 맥주가 너무 삼키기 싫어서 볼따구를 불룩하게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이 마시라고 그러면서 부침개를 입안에 쑤셔넣었다. 오액... 그 순간 생일인 애 엄마가 문을 두들기며 너희들 뭐하냐고 문을 열라고 하셨다. 우리는 마구 서두르며 술 흔적을 지웠고 나는 혼란을 틈타서 맥주랑 부침개를 뱉었다-_-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생일인 애가 우니까 불까봐 두려워... 걔를 커튼에 감췄다-_- 아줌마 문따고 들어오시고... 커튼 뒤에서 울고 있는 걔를 꺼내가셨다; 우리는 걔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뭐 거의 으름장을 놓다시피 했는데 걔는 말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엄마한테 맞아 죽을 뻔 하고 주모자로 찍힌 우리반 반장이랑 놀지 말라는 엄포를 받았다. 그 때까진 엄마가 걔를 되게 좋아했는데, 왜 걔가 주모자로 찍혀서 맨날 같이 놀지 말라고 했지만 6학년 때까지 제일 친했다.

 

암튼 걔는 왜 맨날 우는 거야? 걔 또 울었었다. 우리 집에서 4명 정도가 장난전화를 자주 했는데 한 번은 자동응답기가 걸렸다. 거기에 "수봉공원에 당신 자식을 납치해 왔으니 3천만원을 가지고 내일까지 나오라"고 녹음을 했다. 그리고 깔깔 대고 웃다가 괜히 우리끼리 전화추적하면 어떡하지? 경찰이 잡으러 오면 어떡하지? 얘기를 하다가 걔가 울었다-_- 그래서 다음날 너무 걱정이 되어 학교에서 토론을 하고 집에 와서 그냥 내가 전화를 다시 걸었다. 아줌마가 받는데 너 어제 전화한 애지! 그랬다.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께요 그랬다. 아줌마는 알았다고 신고는 안 하겠다고 그러지 말라고 좋게 말씀해 주시곤 끊었다.

 

후우 그 뒤로 장난전화는 계속 했어도 질 나쁜 장난전화는 안 했다. 아 난 요즘에 3, 4학년 정도 된 여자애들이 너무 이쁘던데, 너네도 이런 짓 하구 있니? 하하 나쁜 짓이 자꾸 떠올라서 이제 그만~~

 

앗참 최주봉 얘기는 어제 최주봉 아들을 티비에서 보고 갑자기 생각났다. 후에 듣길 우리 언니도 그거 보고 그 때부터 최주봉 싫어졌다고 했다. 나랑 내 친구들도 다 싫어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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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정상적인(Awful Normal, 2004)

 

 

여성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며칠 전에 상영회가 있어서 수많은 인파를 제치고 당당히 보았다!!! 사실은 당당히 본 것은 아늼..;;

 

확실히 본인이 자기 얘기하는 거랑 남 얘기하는 거랑 다르다. 아니 뭐 사람에 따라 다른 건지도... 나는 그 이상하게 음악 쓰는 게 너무 너무 싫더라구. 불쌍하게 보이게 하거나 슬프게 보이는 그런 음악들, 뭐 이미 음악 이전에 불쌍하고 슬프게 보고 있는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어린 시절 아빠 친구한테 성추행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 인간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이만큼만 듣고 대체 찾아가서 무슨 얘길 하는 걸까, 얘기를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지 못해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약간의 성과가 있어서 만나는 남자들을 두려워하진 않게 되었지만 글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한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건가?

 

끔찍한 기억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알고 있지만 그리고 모르는 부분이 클 거라고 짐작도 할 수 있지만 나는 기억과 대면할 용기가 아직은 없다. 난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기억에 당황하고 그리고 다시 삭제하고 살다가 또 튀어나오고 그런 식이다.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하는 감독 자매의 그 용기! 그것만은 확실히 의미가 있지만, 그 용기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를 생각해본다.

 

끔찍하게 정상적인이란 말은 지금은 늙어 쭈그러진 가해자를 보고 자매와 엄마(셋이 찾아간다)가 느끼는 것이다. 그는 아동에게 흥분을 느끼는 이상성욕자라는 그것 외에는 좋은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가해자는 아빠와 엄마의 절친한 친구였던 것. 엄마는 이 사람이 좋아서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줬을 정도였다.

 

그런데 촛점은 이 가해자에게 있지 않다. 자매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우리 아빠는(10년 전에 돌아가심), 어떤 일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해 주었는데, 왜 어째서, 이 인간이 우리를 성추행했을 당시에,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이 인간의 편을 든 걸까? 그 뒤로도 한 번도 우리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은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 때만 우리를 지켜주지 않은 걸까?

 

이 배신감은 아빠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된다. 아빠도 혹시 당신과 같은 이상성욕자였던가? 아빠와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가? 가해자는 아니라고 모른다고만 하는데, 그래서 더욱 스멀스멀 내가 당한 끔찍한 기억의 주변을 기어다니던 아빠에 대한 의심은 가해자와의 면담으로 가해자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약간 해소됨과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면할 용기는 아직 없는 건가... 자매는 잠깐의 면담동안 아빠에 대한 의문을 터뜨리고 그리고 곧 침묵한다.

 

성추행을 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무조건적 사랑때문이었다. 엄마만이 우리 편이 되어 주었다. 아빠 또한 우리 편이었다면,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 지금처럼 성추행범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과연 과거에 지배당했을까?

 

그래서 끔찍하게 정상적인 사람은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다시 아빠에 대한 의문을 무의식적으로 침묵시키는 감독 자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아빠도 당시에 자매를 최선을 다해 지켜줬다면 그것만으로 가해자에 대한 충격이 지워지진 않아도 거기에 지배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가해자를 찾아간 용기라는 것은 이제 진실을 맞닥뜨려도 나는 괜찮다라는 강함에서 나온 게 아니라 아빠에 대한 구멍을 메우고 싶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용기지만 결국은 회피해 버린다. 남자를 못 믿어서 연인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단지 가해자에게 성추행당한 것때문이기보다 그렇게 힘들 때 가장 믿고 있던 아빠가 나를 배신했기 때문 쪽인데 아빠에 대해서는 더 커진 구멍을 숨기고 영화가 끝나 버리니까.

 

그래도 엄마는 자매를 이렇게나 사랑해 주고, 이 어두운 영화에서 즐거움이 느껴질 만큼 셋의 믿음과 사랑이 깊으니까 구멍났어도 괜찮다. 최소인원으로 찍어 특별히 새로운 기법이 없어도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적 힘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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