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 만세!

  • 등록일
    2006/10/17 15:57
  • 수정일
    2006/10/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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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진에서*


청중 태반이 여자들이고 또 그 태반이 환히 배꼽이 드러나는 티를 입었다.
울긋불긋 활짝 핀 꽃밭 앞에 내가 서 있다, 눈이 부시다.
여러 나라에서 온 시인들이 나가 시를 읽을 적마다 환호와 박수가 요란하다.
뚱뚱한 이락 여류 시인이 등장하자 환호와 박수는 절정에 달하고,
"팔레스타인 해방 만세!"
절규가 차례로 일어났다가 앉는 물결 리듬을 타고 장내를 압도한다.
조금은 살기가 나아졌다고 우리는 이들 대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 그것이 서럽다.

  청중 속에 섞여 있던 한국 수녀 중 하나는 시인 안도현과 문학 동문이다. 만리타향에 와서 집과 밥이 없는 말 다르고 색깔 다른 사람들을 먹여 주고 재워 준 지 어언 20년, 그들의 교회는 여기서도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들어가는 곳에 있다. 가끔은 좌익 게릴라가 나와 검문을 하는 일도 있지만, 수녀나 시인은 건드리는 일이 없으니 구경 한번 오지 않겠느냐는 초청을 나는 정중히 거절한다. 영동 한 성당에서 눈이 유난히 파란 수녀가 떠 주던 고기 국을 눈을 맞아가며 먹던 그림은 이제 내 머리 속에서 지어진 지 오래지만.

호텔로 돌아와 생맥주를 마시는데 서빙하는 아가씨가 중동계다.
중동 어느 쪽이냐니까 사랑밖에 모를 것 같은 그 입술에서 대뜸 튀어나온다.
"팔레스타인 해방 만세!"
삼십년 전 사십년 전 우리들의 누이들도 맥주를 나르며 저렇게 당당했으리.
문득 나는 이 대열에 다시 끼어든 것 같아, 그것이 두렵다.
             

 

신경림.

 

 

 

 
*마약과 폭력으로 악명 높은 콜럼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에서는 해마다 폭력을 몰아내고 평화를 성취하자는 세계 시의 축제가 열려, 올해로써 열다섯 번째가 되었다.            

신경림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에술》로 등단. 시집으로 《농무》《새재》《길》《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 외 다수. 만해문학상·대산문학상·제6회 만해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 계간지 <유심> 2005년 가을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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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반성합니다만?

 

계간지 유심http://www.yousim.co.kr/이란 게 있었다니. 만해 한용운씨의 얼을 잇는 불교잡진가본데, 시가 잔뜩 있으며 지난호는 웹상에서 볼 수 있다. 멋있어~~~ 이런 거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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