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은행 앞에서

  • 등록일
    2006/10/22 01:08
  • 수정일
    2006/10/22 01:08
  • 분류
  거절당한 대출 서류 보완해 들고
  친구가 근무하는 그 지점으로 다시 간다
  답답하기는 그도 저도 마찬가지
  이 나이 뿌리째 갈아엎으려고
  쇠먼지 속에서나 부대끼며
  하루하루가 다급했던 나날들 지금껏 버텨온 걸까
  누구라도 좋으니 이젠 내게 무슨 변통을 마련해다오
  오랜만의 외출로는 스산한 가을인데
  기름때에 절어 어느 계절이 제대로 흐드러졌었던가
  나는 여름내 땀으로 가꾼 오기
  모두 뭉개버리고 싶다
  모퉁이를 돌면 초등학교 앞 육교 아래로
  새점을 치는지 아이들 여럿 둘러앉아
  난간 위 푸른 하늘로 난데없는 노란 병아리
  떼로 풀어놓는다
  그 건너 도심 방향이 더 확연한 늦가을이어서
  은행 가로수들 황금 가지 치켜들다 못해 좌르르르
  금붙일 쏟아버린다만
  저것들을 쓸어모아 우리가 아이엠에프를 건뎠었던가
  대세가 휩쓸고 갈 경제라면
  나무은행아, 내게도 융자 좀 해다오
  내년 봄까지 어떻게라도 또 버텨보게
  저기 담벼락 밑 양지쪽에 쭈그려 앉은
  거지 아줌마도 본 체 만 체하는
  금화 자루째 쓸어담는 늙은 청소부
  부러워서, 부러워서 나는 자꾸만 바라본다만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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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신승원이 적어 준 시. 그 때는 이런 시를 쓰고 싶다고 그랬는데(걔가) 지금은 아닐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쓴 시를 읽으니 참 마음이 흡족하기도 하였으나, 검색했다가 이 작가가 고려대 교수라는 걸 알고나니 느낌이 반감되네 헐 뭐 태어날 때부터 교수인 건 아니니까.

노란색 병아리가 은행잎이 되어 좌르르 쏟아지는 거나 그걸 금으로 연결해서 대출받으러 가는 은행을 나무 은행으로 바꿔버리는 거 좋다. 좋은데 교수님...ㅠㅜ 교수가 뭐 어때서 교수라고 뭐뭐뭐 그래도 교수 꽥


 

부러워서, 부러워서 나는 자꾸만 교수월급생각을 한다만

전체적으로 심상이 이어지고 시가 참 쉽고 좋다. 교수도 대출이 안돼나요 아나의편겨뉴ㅜㅠㅜ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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