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지난주에 동네 산에 올랐다 야트막한 산 

 

반쯤 올라 휴게소같은 곳에서 계양산 골프장 건설 반대 서명을 받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 남자가 살짝(?) 노래하고 춤추며 이목을 끌고 있었다. 멀리서 보고 서명운동에 사람 끌어들이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현대 카드, 랄라라"라는 자기가 만든 것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휴일에 산 정상에 올라서 신용카드 만드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잠깐 쉬는데 아가씨들 카드 만들으라며 다가왔다. 너무 화가 났다. 카드 안 만들어요, 라고 정색하고 말하니까 같이 정색하며 왜 안 만드냐고.. 일행들은 카드 있어요, 라고 대답했는데 나만 안 만든다고.

 

별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꾸준히 지키고 있는 원칙들이 있다. 카드 안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다.1 그러나 이런 이유는 상관 없다. 나는 현대카드 랄라라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자마자 증오하게 되었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증오가 피어올랐다.

 

나도 알고 있다 그 개인에게 내가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겠냐고. 휴일에 산에 올라와서 카드를 팔아야 하는 그 사람은 뭐 좋아서 그러냐고. 

 

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상주하는 거지를 몹시 증오했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더러움, 그리고 나의 더러움까지 한몸에 응집해서 가지고 있는 자.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고, 가끔씩 스쳐지날 뿐인데도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저 사람을 증오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그를 볼 때마다 피어나는 증오심이 구체적 개인인 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위험하고, 나쁘다.

 

졸업하고 거지에 대한 증오심은 그냥 수그러들었는데, 오랜만에 일어났다. 산속에서 현대카드 파는 사람을 보고.... 동정심으로, 증오심으로 피어나는 나의 마음. 뭐 그냥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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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지만 작년말쯤에 체크카드 만들어서 엄청 잘 쓰고 있는데, 며칠전에 뭐 먹고 보니까 신용카드라고 찍혀 있더라구. 같은 건가?? 충격...;;;; 은행이 돈 버는 점은 같다고는 들었는데. 없앨까보다. 써놓고 보니 왜 체크카드는 아무생각 없이 썼던 거지?? 충격...;;;;;;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