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되는 ㅁ이가 [역사저널 그날]을 추천해 같이 함 보니 진짜 재밌어서 오늘도 시청 중. 문종에 대한 얘긴데 그 아비인 세종이 세자빈을 두 명이나 폐위해서 세 번이나 결혼했다고. 그럼서 그 이유로 나오는 게 신기해서 실록을 찾아보니 과연 토크에 나온 그대로이다. 재밌어서 옮겨둔다.

 

“근일에 폐위한 세자빈의 실덕한 일이 매우 많은데, 내가 낱낱이 들어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전에 교지를 내려 다만 몇 가지 일만 한 나라의 국모로서의 의표에 진실로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들었을 뿐이다. 다만 왕후를 폐하고 아내를 내쫓는 것은 예로부터 삼가는 바이니, 진실로 인륜의 근본이므로 경솔히 바꿀 수 없는 까닭이다. 하물며 지금 세자는 전에 김씨(金氏)를 폐했는데 또 봉씨(奉氏)를 폐하게 되니, 이것은 나와 세자가 몸소 집안을 올바르게 거느리지 못한 소치이다. 아마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능히 자기 몸을 반성하지 못하면서, 다만 털을 불어 헤치고 남의 허물만을 찾아내려고 애써서 폐척(廢斥)을 잘 행한다. ’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란 경상(經常)을 지킬 수도 있고 또한 권도(權道)를 따를 수도 있으니, 어느 한 가지에만 구애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경》을 지으면서도, ‘손열(巽劣)로 권도를 행한다. ’고 하였다. 한 사람의 어리석은 부인으로 장차 국모를 삼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끝까지 잘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 상도에 얽매어 세자빈을 폐하고 새로 다시 세자빈을 세우지 않겠는가. 대체로 중인(中人) 이하의 사람들은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어서, 여울의 물과 같이 동쪽을 터뜨려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뜨려 놓으면 서쪽으로 흐르게 된다. 다만 아주 어리석은 사람의 기질은 변하지 아니하므로, 비록 성인과 함께 거처하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게 된다. 봉씨의 어리석음은 비록 부지런히 가르쳤지마는 마침내 고치고 뉘우치는 뜻이 없었다. 전번에 대략 그 대강을 설명했지마는 나머지 일들을 언급하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또 이를 다 말하게 되니 마땅히 이를 함께 알아야 될 것이다.
처음에 김씨를 폐하고 봉씨를 세울 적에는, 그에게 옛 훈계를 알아서 경계하고 조심하여 금후로는 거의 이런 따위의 일을 없게 하고자 하여, 여사(女師)로 하여금 《열녀전(烈女傳)》을 가르치게 했는데, 봉씨가 이를 배운 지 며칠 만에 책을 뜰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것을 배운 후에 생활하겠는가.’ 하면서, 학업을 받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열녀전》을 가르치게 한 것은 나의 명령인데도 감히 이같이 무례한 짓을 하니, 어찌 며느리의 도리에 합당하겠는가. 또 생각하기를, 부인이 반드시 글을 배워서 정사에 간여하는 길을 열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 하여, 다시 그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다. 또 세자의 유모가 죽었으므로 이름이 고미(古未)라고 한 늙은 궁궐 여종으로 하여금 궁중의 일을 대신 맡게 했는데, 봉씨가 밤마다 고미를 불러 말하기를, ‘할미는 어찌 내 뜻을 알지 못하오.’ 하니, 대개 이 노파로 하여금 세자를 불러 오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떳떳한 정리이지마는, 그러나 부인이 남편을 잃어도 밤에 울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혐의를 피하는 때문이다. 그런데도 더군다나 매일 밤마다 세자를 보고자 하니, 어찌 부인의 도리에 적합하겠는가. 또 세자가 오랫동안 밖에 옮겨 가 있다가 돌아와서, 궁궐에 들어와 뜰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는데, 빈의 궁에 가까이 이르니, 봉씨가 지게문으로 바라보고 말하기를, ‘저 분이 왜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연히 밖에서 걷고 있을까.’ 하면서, 자기 있는 곳에 들어오기를 바랐으니, 이것도 또한 상스러운 일이다. 또 성품이 술을 즐겨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 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시어 몹시 취하기를 좋아하며, 혹 어떤 때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업고 뜰 가운데로 다니게 하고, 혹 어떤 때는 술이 모자라면 사사로이 집에서 가져와서 마시기도 하며, 또 좋은 음식물을 얻으면 시렁 속에 갈무리해 두고서는, 손수 그릇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서 먹고 다시 손수 이를 갈무리하니, 이것이 어찌 빈이 마땅히 할 짓이겠는가. 또 내가 중궁과 함께 항상 세자를 가르쳐서 마땅히 빈궁을 접대하도록 했는데, 세자가 며칠 동안 왕래하였다가 그 후에 드물게 가매, 봉씨가 노래를 지어 궁궐의 여종으로 하여금 이를 부르게 하니, 그 대개는 세자를 사랑하는 내용이었다. 또 그 아버지가 죽은 초기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이를 두었다가 그 어머니 집에 보내므로 세자가 알고 이를 금지시키니, 그 술을 모두 안으로 들여오게 하고는, 말하기를, ‘이 술은 내 몫인데 이미 이것을 집에 보내지 못할진댄, 마땅히 내가 스스로 마셔야 되겠다.’ 하면서, 상이 1백 일을 지나지 않았는데도 평상시와 같이 술을 마시었다. 또 중궁이 궁인을 대우하는데 매우 은혜와 예절이 있었으므로, 궁인이 죄가 있으면 몸소 책망하거나 벌주지 않고 반드시 나에게 아뢰어 이를 결정하였는데, 봉씨는 여러 번 투기 때문에 몸소 궁인을 구타하여, 혹 어떤 때에는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니, 어진 부인이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시골의 여자로 궁중에 들어왔으니, 마땅히 공손하고 잠잠하여 자기 몸을 지켜 경계하기에 여가가 없을 것인데도, 교만하고 무례함이 이와 같았다. 세자가 항상 말하기를, ‘내가 그를 총애한다면 투기하고 사나워져서, 비록 칼날이라도 또한 가리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 뜻대로 된다면 옛날의 한나라 여후(呂后)2701) 라도 또한 능히 이보다 더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그 말이 아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무릇 이 몇 가지 일은 전일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마는, 그대들은 마땅히 이를 알아야만 될 것이며, 또 세 대신들에게 전해 말하여 내가 마지못하여 세자빈을 폐출하는 뜻을 알리기 바란다.”

 

 - 세종 75권, 18년(1436 병진 / 명 정통(正統) 1년) 11월 7일(무술) 1번째기사
봉씨를 폐출시킨 이유를 부연하여 대신들에게 알리다

 

폐위 당한 뒤에는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네. 실록이 참 자세하고 의외로 재밌다.

 

문종은 39 정말 젊어서 죽었구나 문종도 불쌍하다 ;ㅁ; ㅆㅂ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데 신하놈들이 뭘 어쩌네 저쩌네 묻고 자빠졌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불가하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돼 안 된다고 아놔 불쌍해 =ㅅ=;;;; 당시에 왕 죽으면 '훙薨하다'라고 표현했네 훙이라니... 훙이라니이...!!!!<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 개별 아이템당 퍼머링크는 제공 안 함-_-

"역사" 분류의 다른 글

반구대 암각화 잠깐 다녀옴 (2)2015/04/04
도둑맞은 네팔의 신들 (0)2018/08/10
유목민 (0)2015/06/23
2014년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예노동 (2)2015/04/25
프랑스 해외 영토 (6)2007/05/0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4/03/16 23:14 2014/03/16 23:14

트랙백

http://blog.jinbo.net/taiji0920/trackback/279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