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필리핀 입주 가사 노동자들 '아마'

  • 등록일
    2017/01/20 01:03
  • 수정일
    2017/01/20 11:57
  • 분류
    여행

얼마 전 홍콩섬에 가서 건물 1층 주차장 같은 곳에 엄청 많은 여자들이 골판지 박스를 깔고 앉아 있는 걸 몇 번 봤다. 첨엔 콘서트 대기 중인가? 캐리어는 멀리 지방(?)에서 오느라고 끌고 온 건가? 싶었는데 이런 인파가 계속, 계속해서 나오다 IFC몰과 항구를 잇는 길고 커다란 육교를 본격적으로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곤 뭔 일인가 깜짝 놀랐다. 노숙인1이라고 보기엔 행색이 너무 좋고, 또 깔고 앉거나 가리개로 사용하는 골판지도 엄청 튼튼하고 새 거인데다 무엇보다 육교 양옆을 빼곡히 차지한 엄청난 인파가 도시락도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춤(!)도 추는 걸 보니 축제의 날인가? 싶다가도, 그런데 이런 바람 씽씽 부는 육교 위에서 축제를 할라나? 싶으면서도 어째 이 많은 사람이 전부 다 여자인데다 홍콩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도대체 뭘까 어리둥절하고 너무 궁금해서 말 걸고 싶은데 다짜고짜 뭐 하는 거냐고 영어로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해서 이리저리 검색해 봤다. 이들은 홍콩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로, 하루 24시간 주6일 일하고 일요일에만 쉬는데, 갈 데가 없어서 이렇게 공원이나 육교를 가득 메우고 서로 책도 교환하고 머리도 자르고 게임도 하고 기타 등등 사교 생활을 한단다. 홍콩섬에 간 날이 일요일이라 보게 되었다. (사진 많은 글: Maids in Hong Kong: Homeless every Sunday)

 

홍콩에서 대단히 부유한 집이 아니어도 입주 가사 노동자를 많이 둔다는 건 십여년 전 읽은 만화2를 통해 알고 있었다.

 

홍콩엔 현재(1996년) 약 12만명의 필리핀인이 살고 있다. 그 대부분이 '아마'라고 불리며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이다. 홍콩에서는 일반 맞벌이 가정이 가정부를 두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로, 싼 임금으로 일해주는 필리핀 아마들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한다.

- 나루시마 유리 作 [소년 마법사] 1부 '홍콩 살인마 잭' 중에서

 

2016년 현재 필리핀인 가사 노동자는 약 19만명. 인도네시아 출신을 포함하면 30만명을 훨씬 넘는다. '아마(Amah)'는 그 어원이 포르투갈어인지, 중국어인지조차 불확실하다는데(영문 위키) 동남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라고 하니, 옆동네 마카오가 포르투갈 식민지였음에 비춰 볼 때 포르투갈어였을 수도, 원래 어느 나라나 사는 집에 유모가 있었으니 원래 있는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 아마들에 대한 영문글 중엔 이들을 그냥 maid라고 칭하는 것도 많았는데, 요즘엔 helper 혹은 domestic worker라고 쓰는 추센 듯 하다. 한국에서 가정부란 말 안 쓰듯이.

 

아마도 내가 부주의한 탓에 매주 일요일 홍콩섬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거리로 나온단 걸 기억하지 못할 뿐, 어디서 접하긴 했을 것 같다. 어떤 여행자라도, 아무리 부주의할지라도 일요일에 홍콩 빅토리아 공원부터 센트랄 어딘가 걸어본 사람이라면 큰 공간마다 모인 다 합치면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안 보일리 없고, 매우 강렬한 기억이 됐을 것 같아서. 우리 아빠도 홍콩 가봤을 만큼 홍콩 여행자가 많은 한국에서 누군가 어딘가에 적은 걸 분명 봤을 것 같다.

 

검색하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바로 이들의 미인 대회를 찍은 다큐 [선데이 뷰티 퀸]이 상영됐다는 걸 알았다. 아..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봐야지. 트레일러만 봐도 재밌어서 퍼왔다. 홍콩 가기 전에 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ㅠㅠ (영화 소개: 고용주가 남긴 음식 먹고, 한데서 쪽잠... 서러운 가사도우미들)

 

 

홍콩에서의 필리핀인 입주 가사 노동자는 70년대 말엽 홍콩의 경제성장과 필리핀의 해외로의 노동자 수출(한국과 비슷하다) 정책의 일치에서 시작됐단다. 글 쓰다 검색했는데 홍콩의 가사 노동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영문 위키에 잔뜩 있다(근데 여기엔 아마란 표현이 없네..?).

 

이들은 법률상 고용주의 집에서 숙식해야 한다. 여행 다닐 때 어떻게든 저렴하게 다니려고 온갖 숙소에서 자봤지만, 홍콩의 숙소는 정말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좁은 집 처음 봤다 싶게 좁았다. 홍콩의 집이 일반적으로 너무나 좁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방을 따로 배정받지 못한 아마는 마루에서 자거나 어린이방에서 함께 잔단다. 저임금은 별도로 치고 그 외에 성폭행, 임금 체불이 아니더라도 노동 조건이 열악할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 1일 휴무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데, 휴일에 아마들이 집에 있는 걸 원치 않는 고용주가 많아서 갈 데가 없어도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물론 휴일에 자발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다시피 홍콩의 물가는 높은 편이고, 낮은 임금의 대부분은 집으로 송금하기 때문에 여윳돈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일요일 거리 문화가 정착된 것 같다.

 

임금 협상은 홍콩 정부랑 한다. 2017년 올해 최저임금은 약 65만원(4,310 홍콩달러)으로, 약 76만원의 최저임금을 요구했던 가사 노동자들에겐 몹시 실망스런 결과였다고. 재밌는 건 홍콩 최저 임금은 '외국인 가사 노동자'와 '비-가사 노동자'의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이 구분을 없애려는 시도가 좌절된 바 있다. 당연히 전자가 훨씬 적다. 2017년 홍콩 비-가사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34.5홍콩달러다. 홍콩 평균 임금은 약 235만원(15,447 홍딸)인데 가사 노동자가 15만 7천원(1,037 홍딸) 가량의 식대를 따로 받는다 쳐도 택도 없이 낮다.

 

한국엔 가사 노동자용 취업 비자가 없다. 맞벌이 부부의 양육 문제 해결을 위해 홍콩을 모델로 한국도 필리핀 가사 노동자용 취업 비자를 발급하자는 논의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거기서 핵심은 각 가정이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거다. 제대로 지켜지든 말든 어쨌든 한국에선 이주노동자도 최저 임금 적용대상이 되는데, 홍콩처럼 그 최저 임금조차 적용하지 않고 월급여로 60만원, 70만원 줘서 여자들이 양육 부담 없이 일할 수 있게 하자고 이딴 소리를 한다. 한국도 중국도 많은 사람들이 입주 가사 노동자를 탈법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선 홍콩보다 임금이 두 배 이상 높고 필리핀인 20만명 이상이 이미 일하고 있어서 필리핀 정부가 합법화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작년 기사: [취재파일] 가사도우미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궁금해서 찾아본 걸 대강 정리해 봤는데 중간중간 검색하면서 끊어지며 써서 글이 딱딱하다. 나중에 손봐야지.. 고용주들이 쓴 글도 몇 개 봤는데 뭐랄까.. 그냥.. 뭐 그냥.. 뭐... 모르겠다-_- 뭐 됐고 찾아보며 몇 년 전 자본론 강독 모임에서 함께 번역했던 자야티 고쉬의 [여성은 어떻게 자본주의의 노동 예비군이 되었나]가 떠올랐다. 아시아 여성 노동 일반을 다룬 글인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가사 노동이 언급된다.

 

이것(경제적 이주)은 또한 새로운 형태의 생산 사슬과 결합되어 왔다 : 돌봄 경제의 지구화. 이것은 다른 (부유한) 지역으로의 여성 이주가 동반된다. 그러한 지역들에서는 가구의 1인당 소득과 인구학적 분포가 결합되어 가정 돌봄 노동의 외주화를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노동은 그전에는 가구의 여성 일원의 미지불 노동이었다.

 

몇 년 전 봤던 다큐 [엄마는 불법체류자]도 생각난다... 이거 생각하면 눈물 남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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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빈한한 경험상 길거리에 골판지 깔고 앉아 있으면 노숙인이 먼저 떠오르는 모양이다.. 하아..텍스트로 돌아가기
  2. 여담으로 대원은 [소년 마법사] 뒷권 제발 내 주길..ㅠ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