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디스트 아니면 진심

  • 등록일
    2004/11/13 19:17
  • 수정일
    2004/11/13 19:17
  • 분류
    마우스일기

예전에 가수 비를 좋아하던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시절에 무슨 쇼프로그램에 나오기만 하면 엄마 얘기를 시켰다. 결국 비가 울게 만들고 모두 침울한 분위기가 됐다가 하늘에 계신 엄마께 잘 살겠다고 한 말씀 드리고 계속해서 쇼쇼쇼!

 

비가 울 때 나도 따라 울었지만 볼 때마다 불같이 화가 났다. 저 새디스트들. 우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지. 저번에 풀하우스 끝나고 인터뷰하는데 또 엄마 얘기를 했지만(새디스트는 끈질기다 질리지도 않는다) 비는 노련하게 얘기했다. 당연히 울지도 않고. 아 이제 쟤도 정말 너구리가 되는구나.

 

왜 남이 우는 걸 좋아하는 걸까. 왜 남의 불행을 굳이 듣고 싶어할까. 그런 걸 만드는 인간들보다 보는 인간들이 더 짜증난다. 어머 쟤는 그런 아픔을 갖구 있구나 불쌍하다

 

근데 늑장 부린 날 아침에 아침마당을 보면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남편한테 당한 얘기나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울고짜고 한다. 방청객 아주머니들이나 엄앵란 씨의 표정은 어이구 딱하기도 하지 그런 얼굴이다.

 

말하기-동조받기-울기(생략가능)를 통한 카타르시스가 요새 사람들은 되게 큰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굴곡 많은 어찌보면 정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티비에까지 나와서 하고 싶어하는 걸지도.

 

그걸 보며 안됐다 하고 마음 아파 하고 같이 울기도 하는 시청자들이 모두 새디스트는 아닐 것이다. 비슷한 체험을 통해 사추하고 결국은 자신을 생각하며 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긍정적인 기능은 건강에 도움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불행을 얘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싫다. 갑갑하다.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은 뭘 느끼는 걸까? 예를 들어 비의 경우, 아이구 저런 딱하기도 하지, 그래도 저렇게 잘 자라서 건실하게 사는구나. 그리고 눈물 일 방울 흘리는 건가?? 나는 저런 내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 쟤는 지금 얼마나 비참할까.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배려심이 없을까. 열이 뻗친다.

 

이런 장면은 정말 흔하다. 아프고 괴로운 사람한테 꼭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그거 묻는 사람은 시청자들이 알고 싶어하니까 굳이 묻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본가? 그런 상황을 보면서 어떤 기분일지 말로 표현해야만 알겠는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라면 할 수 없겠지만 묻고 싶은 이유는 새디스트라서다. 더더욱 괴로운 상황을 말해라, 더더욱 함께 괴로워해 줄께, 괴롭냐? 나도 괴로워~~

 

지금 기분이 어때요

썅 니는 어떠냐? 니 인생 얘기 좀 해 봐라. 니는 어떻게 살아왔길래 보고도 모르냐?

 

아무도 이렇게 화내지 않더라. 정말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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