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생

신일숙 선생의 스토리는 일단 재미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재미있다. 밀고땡기는 대사도 잘 쓴다. 참 잘 받아친다. 그런데 항상 '정통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싫다. 정통성의 기준도 인위적이다. 아마도 순정만화 주인공 중 가장 매력없으며 가장 미움받은 캐릭터일 <리니지>의 데포로쥬 왕자는 개뿔도 하는 거 없이 순전히 아덴 왕국의 할배가 왕이었고 엄마가 그 공주고 아빠는 전시에 나타나 위기의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왕족으로 어른입양-_-되어 왕위계승권을 갖고 왕위계승서열1위의 엄마랑 결혼해서 태어났다는, 순전히 혈통때문에 정통성을 부여받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막내딸... 이름이 뭐더라... 으읍=ㅅ= 암튼 딸내미는 첫째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번엔 장자혈통은 됐고(됐그등?) '불새의 운명'때문에 정통성을 부여받는다. 게다가 시껍할 일은 샤르휘나(맞다)는 처녀였다! 숫처녀 말이다! 숫처녀이어야만 귀환권이 생긴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다가 사래 걸리는 재미없는 상황이란 말이더냐...

 

1999년생은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고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으로 정통성 라인은 아니다. 그런데 왜 위에 저 얘기를 했냐면... 정통성 라인이 아니라고 그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기억이 도통 안 난다는 것이다-_-

 

이 만화도 무척 재미있다. 그런데 1999년생으로 2017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나 세계가 아직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여성은 소수'라는 재미없는 생각으로 일관된다. '원반인'이라는 외계인들이 쳐들어와 전지구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왜냐면 전쟁같은 거 하면 더더욱 보수적이 되니깐 말이다.

 

그런 점은 지금 보기에는 좀 답답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의 순정만화들을 보면 내가 과연 이 때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남자와 여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관습적인 여성성을 강조한다던가 아니면 다른 여자들은 다 관습적인데 주인공만 튄다던가 그렇게 별로 여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요즘에도 별다를 바 없군....

 

그런데 신일숙 김혜린 등 작가에게 페미니즘의 향기가 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향기가 난다는 표현은 내가 지어낸 거고. 그런데 나는 그게 전혀 안 난다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론 옛날 작품들엔 개성있는 여성이 별로 없었고 특히 신일숙 선생의 경우 여자 주인공을 전면적으로 내세워서 그렇게 오해할만 하지만... 김혜린 작가의 경우 음.. 뭐랬지-_-? 음... 여주인공이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한국여성이랬나? 남자로부터 독립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만 신일숙 선생의 얘기만 하자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얼마나 보수적인가!!! 샤르휘나라는 선택받은 존재를 위해 대체 몇 명이 죽는 거냐고요... 샤르휘나가 중간에 "나만 죽으면 돼!"라고 소리치는데 맞다고요... 동감이라고요... 너만 죽으라고요... 물론 샤르휘나가 왕이 된다라는 지극히 뻔한 결말이 첫 권부터 보임에도 그 정해진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런데 그 보수성은 다음에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대해 쓰면서 자세히 쓰면 되지 않나? 나는 방금 오랜만에 본 1999년생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1999년생은 당시 SF를 하는 순정작가가 없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고 하고 남성독자를 포섭했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고 하고... 자세한 것은 검색을 하면 알 수 있다;

나도 중학교 때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 나중에 구해 버렸다. 그동안은 여성에 대한 작가의 왜곡된 시각에 더 눈길이 갔는데 오늘은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사이보그를 개무시하는 거다! 사이보그 주제에, 그런다!!! 뭐야뭐야뭐야아아아아

 

사이보그를 무시하는 거다! 그러는 거다!! 지네는 초능력자라고, 흥! 사이보그가 뭐시가 어쨌간디! 자기가 좋아서 사이보그가 되었나?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좋아서 됐다면 사이보그가 뭐가 어때서! 그러니까 이미 그 사회는 사이보그가 존재하고 있는데 사이보그를 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저급한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아...(쓰러진다)

 

SF는 미래보다는 현시대를 반영하니까 뭐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의 바람을 적어본다면 매우 미래적인 매우 지금이랑 완전 다른 SF 설정을 가진 작품을 보고 싶다고라... 테크놀러지 쪽만 뭐뭐가 다르지만 결국 인간사회 대충 비슷하다는 거 말고 완전 개념이 다르고 혹은 개념이 없는 그런 걸 보고 싶다.

 

그냥 사이보그 하대하는 거 보고 열받았다-_- 그럴 거면 사이보그같은 거 만들지 말란 말이다! 왜 만들고선 하대하냐고오!!

 

그밖에 짧게 주인공에 대한 "아르테미스 사냥"에 대해 말하자면, 프라이드와 결벽증 덩어리인 아르테미스 성향의 여성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남자가 어울리는데 그 남자로 주인공한테 상처를 줌으로써(아아 이건 요약이 아니고 네타를 막기 위한 최선의 잘못된 요약) 평생 남자를 불신하고 사랑을 끔찍히 여기는 여자로 만드는... 그렇게 느낄만도 하지만 인간은 왜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 하는가? 니땜에 죽은 걔랑 니땜에 희생한 걔네들을 생각해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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