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설(美知說)

  • 등록일
    2005/09/12 00:51
  • 수정일
    2005/09/12 00:51
  • 분류

시름시름 아프고 힘이 없길래 혹여 죽을 병 걸린 건 아닌가 하고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아보았다. 불규칙한 생활 탓으로 아무 이상 없다는 쪽만 당하고 나왔다.

장시간 컴퓨터를 하여 눈이 몹시 나빠졌을 것이고 그로 인해 어질어질한 것이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어 죽을 병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눈이 나빠졌으니 하는 수 없이 안경을 맞추러 갔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안경을 써보니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메이커를 써봐도 마찬가지다. 며칠 후 다른 안경점에 가서 몇 가지 골라보니 그 중 어리석지 않아 보이는 것이 있어 사버렸다. 그런데 안경을 쓴 모습을 본 지인들이 아름다우며 지적으로 보인다고 온통 난리였다.

 

아! 무릇 아름다우며 지적으로 보인다면 대단히 기쁘지 아니한가. 더더군다나 어리석어 보임을 면하려 했을 뿐인데 되려 칭송을 받으니 이 어찌 잊어 버릴 수 있겠는가?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미지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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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설'이라는 장르로 글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써보았다. 엊그제 썼어야 할 것을 쯧쯧쯧

내 참고한 이곡의 글을 친히 수록하노라. 참고만 했을 뿐 구조는 따라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밝히노라.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였으나,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타면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여 고삐를 놓으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을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가정집 (稼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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