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끄기 체험 삶의 현장

  • 등록일
    2005/09/16 14:22
  • 수정일
    2005/09/16 14:22
  • 분류
    마우스일기

 

나는 휴대폰이 싫다. 공부에 집중했거나 영화나 음악에 빠져있을 때 개의치 않고 아무 때나 울려대서 너무 싫다. 걸려온 전화가 기다리던 전화였더라도 싫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울려서 감정선을 끊어 버리는가?


그래서 없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남자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테나가 부러지면서 전화가 잘 안 온다. 문자도 잘 안 온다. 언니가 휴대폰을 새로 사주겠다고 했지만 이런 상태가 훨씬 편하다. 지인들이 내 휴대폰 상태를 알고 있으므로, 전화받기 싫을 때 “전화 안 왔어~ 내 꺼 고물이잖아~”라고 거짓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제를 하는 것이 나에게 하등의 지장이 없으리라 여겼다. 남자친구랑 하루종일 노는 토요일, 중요한 연락이 올 것도 없고 해서 다음날까지 28시간을 꺼놨다. 다음날 일어나서 확인해보니 너무너무 중요한 문자가 와 있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토요일 8시에 KBS에서 팔레스타인에 관한 필름이 방송되고 있으니 보라는 문자였다.


3년 전 휴대폰이 고장났을 때 6개월 정도 휴대폰 없이 지냈는데 “너랑 연락이 안 돼서 불편하다”라는 짜증을 많이 들었다. 나도 원거리 약속에 조금 늦는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전철에서 내려 공중전화를 찾다가 없어서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없어도 어찌어찌 살 수는 있는데 2000년대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휴대폰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거 정말... 더더욱 휴대폰이 싫어진다. 너가 좋지도 않은데 너 없인 못 산다니.


그렇다 해도 언젠가, 될 수 있으면 빨리 휴대폰에서 자립하고 싶다. 그건 나 혼자만 성취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에겐 하나의 희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