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9일,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위해 일어서다

12월9일,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위해 일어서다를 퍼왔어효

 

인티파다, 침묵을 뚫는 분노의 폭발

 

이스라엘 국경수비대가 고립장벽의 철거를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구타하고 있다. 2005.12.3
1987년 12월9일, 이스라엘군 지프 한 대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벌어져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4명이 즉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이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본격적으로 인티파다(민중항쟁을 뜻하는 아랍어)에 나서게 됩니다.

수 십 년째 계속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폭력, 차별, 식민 통치 등에 대한 분노가 쌓여 가고 있던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또다시 사망하자 드디어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인티파다의 시작은 그렇게 조직적인 투쟁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분노의 폭발이었던 것입니다.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파타, 팔레스타인해방 인민전선, 팔레스타인해방 민주전선, 팔레스타인 공산당 등이 통일사령부를 구성해 항쟁을 주도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는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통일사령부와 함께 광범한 항쟁의 물결을 일궈갑니다.

흔히 언론에서 보듯이 인티파다라고 하면 투석, 총격 등의 방법을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초기 인티파다는 이보다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행정 조치에 대한 불복종, 이스라엘 상품 불매 운동, 세금 납부 거부, 파업, 상가 철시 등 그야말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은 무력 진압, 체포, 살인뿐만 아니라 학교 폐쇄, 통행금지, 대규모 국외추방 등입니다.

1993년 맺어진 오슬로 협정이 평화협정이 아니라 점령 합법화 협정이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졌다. 왼쪽부터 라빈 이스라엘 총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아라파트 PLO 의장 
인티파다와 아라파트

인티파다가 계속 되는 동안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1991년에는 미국과 영국 등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걸프전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라파트와 PLO의 실수가 벌어집니다. 이라크와 후세인을 지지했던 거죠. 주변국들 가운데 이라크가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 지지해 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아라파트가 이라크를 지지함으로써 쿠웨이트와 주변국에 있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송금하던 돈은 뚝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인티파다도 조금씩 기운을 잃기 시작합니다. 1990년 10월9일 이스라엘 군인은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인 19명 살해하고, 1992년 12월엔 413명을 레바논 국경으로 추방 등 이스라엘 점령군의 억압과 탄압은 멈출 줄 모르는데다 오랜 기간 계속된 투쟁으로 내부 경제는 붕괴되어 갔던 것입니다.

인티파다를 확실하게 잠재운 것은 1993년 이스라엘과 PLO 사이에 맺어진 ‘잠정 자치에 관한 제 원칙 선언(일명 오슬로 협정)’입니다. PLO와 아라파트의 입장에서는 외부 지원이 대거 끊긴 상태에서 내부 개혁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인티파다를 잠재울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오슬로 협정은 탄생하게 됩니다.

Al Quds (노래 : Fairooz)
Al Quds는 예루살렘의 아랍어식 표현으로 이 노래는 낯선 사람들이(이스라엘) 와서 모든 것을 파괴, 사람들을 죽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인티파다, 항쟁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변화를 위한 행동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5년 여 동안 계속된 인티파다는 1천구가 넘는 주검을 남기고 1만 6천명이 구속되었고, 수많은 집들이 부셔졌습니다. 하지만 1987년 1차 인티파다의 시작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됩니다.

인티파다는 PLO가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 등으로 옮겨 다니며 벌이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중심을 국내로 옮기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정치 조직뿐만 아니라 노동자, 여성, 청소년 등 광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이 항쟁에 참여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자신감, 억압에 대한 저항의지 등을 일깨우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차에 타고 있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사망했다. 2005.11.1 

국제적으로도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사격을 하는 이스라엘군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주변 아랍국들에게는 인티파다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티파다의 목표가 이스라엘의 점령 중단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 대한 개혁의 요구도 함께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독재나 왕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주변 아랍국들에게는 인티파다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지나 않을까 오히려 걱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1차 인티파다는 오슬로 협정과 함께 막을 내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혹시나 평화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7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어, 2000년 9월에는 알 아크사 인티파다(2차 인티파다)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이 1차 인티파다나 알 아크사 인티파다 초기처럼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대규모 항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하기를 멈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티파다의 정신은 때로는 폭풍으로, 때로는 잔잔한 파도가 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점령중단, 인권보장, 정치민주화, 성평등 등 각 분야에서 절망의 날들을 희망의 날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 순간이 바로 인티파다의 순간인 것입니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이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 누군가가 걸어가고 자꾸 사람들이 가게 되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링크 걸면 잘 안 읽는 것 같아서 퍼왔어요.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 인티파다에 대한 쉬운 설명이네요~~ 훌륭한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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