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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연구

  • 등록일
    2004/11/20 23:35
  • 수정일
    2004/11/20 23:35
  • 분류

 

지난 1000년 간 일본 문학자에 대한 독자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소세키.

한국일본학협회 일본문화연구총서 (3) 나쓰메 소세키 연구를 보다.

 

그 해석 방식에 있어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작가 개인을 탐구한 책이다. 소세키 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읽기는 아니다. 거의 소세키 사생활을 파파파헤쳤다-ㅅ-.

그 이유는 소세키가 일본 문학에 있어 너무 성인시 되어서라는데. 나는 별로 성인이라고도 생각 안 했었는데.

 

모두 6장으로 되어 있고 7장 결론에 정말 친절하게도 6장의 내용을 간추려 놓았다.

1- 소세키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많다.

2- 소세키는 기구한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파라노이아 증세가 심했다. 열등감과 우월감의 극단을 왔다리갔다리 하는 이중적 의식구조의 소유자였다.

3- 영국유학 가서 느낀 신체적, 문화적, 학문적 열등감이 영국->서양에 대한 증오심이 되고 이것이 "자기본위(개성발휘)"의 사상을 창조케 한다.<--이것은 이기주의일 뿐이라고.

4- 그는 자유로운 자아를 고수하기 위해 그것을 저해하는 것에 대항하기보다는 자유의 안전지대로 도피하려는 의식이 강했다.

5- '만한(만주-한국) 여행' 이후 정부나 사회비판은 커녕 문명비평도 거의 없이 천황제 제국주의에 동조하게 된다.

6- 신여성을 혐오하고 교육받은대로 현모양처를 찬양했으나 신여성을 더 좋아하는 이중적 마음을 갖고 있었다.

 

사실 본문을 보면 너무한다 싶을 정도의 파파라치같은 내용이 많다. 절대 유상희 씨의 노고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본에서의 연구기간을 소세키의 영국 유학 시절에 빗댄 만큼 그 고독을 내가 어찌 험담하리. 그냥 나는 나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파헤친다면 너무 화가 나서 뒤집어질 것 같다-ㅅ-;; 평생을 평범하게 살리라 다짐하노라.

 

어차피 책을 읽어도 소세키가 순응주의자라는 것은 알 수 있고, 인격적 비방은... 뭐 성인시하는 측에 대항하자면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아참 동성애 의혹에 대해서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동성한테 느끼는 여러가지 호의와 사랑을 단순히 연애 대상에게 느끼는 것과 동치시키는 것은 잘못됐다. 세상에 좋아하는 여러 감정을 분류하자면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뉠 수 있지 않을까?

남자에게 다정했고, 심지어 자신을 연애 대상으로 바라본 자에게도 다정하게 대한 것은 자신이 동성애적 기질이 있어서라기보다 단순히 남성우월주의자라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당시에도 여성은 현모양처로만 교육받았으니까. 그래서 남성만큼,보다 뛰어난 여성을 보면 너무 싫으면서도 또한 무한한 애정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동성의 고백에 태연했던 것은 동성애에 별로 편견이 없어서일 것 같고.

 

호남형 얼굴에 곰보. 일본 최초 국비 유학생으로 박사 학위도 못딴 낙오자. 교류하는 문인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만 보였으나 가족들에게는 추악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

어차피 우리 아빠가 아니고 이미 죽은 사람인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므로-_- 한없이 안 싫어지는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_-;; 결점마저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 비극에 마음 아프다면 이미 말 다 한 거지 모-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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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

  • 등록일
    2004/11/20 14:41
  • 수정일
    2004/11/20 14:41
  • 분류

 

책읽기란에 처음 쓰는 시집이네.

이오덕 선생이 30여년 전 가르친 청리 초등학교 아이들의 시집.

꽈광! 감동의 물결이었다. 사야지.

 

일곱살 여덟살 때, 우리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는데 언니에게 동시집이 한 권 있었다. 내가 읽을 책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 시집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다가 공책을 마련해서 시를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고쳐서 적어보고 몇 편 새로 쓰기도 하고. 그 때의 심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굳이 안 적어놔도 될 정도다. 시는 다 까먹고 단 한 편만 생각나지만, 암튼.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며 국어 수업 시간에 시를 배웠다. 시를 배우면서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나는 시를 거의 증오했다. 시의 형식이라고 배워지는 것들 - 운율, 각운, 대구법 등등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면서 시를 읽고 이해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너무 싫었다. 언어영역에서 시는 다 틀린 적도 많았다. 그러고보니 대머리도 그랬다는데.

 

그나마 시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것이 자유시였지... 자유시도 시인 이상 시의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고도 배웠었지. 제길 쓸데없는 거 가르치긴.

그래서 초딩 때부터 쓰는 시는 전부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기형적 형태였고 초딩 5, 6학년 때 문집을 편집할 때 내 시는 싣지 않았다. 너무 꼴보기 싫어서.

 

그러다가 왜 문학동아리에 들어가서 시를 쓰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거기서 많이 얘기하고 읽으면서 생각도 많이 변하고...

 

이 시집의 신선함이 가히 꽈과광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함박웃음을 머금고-ㅅ- 시를 읽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대충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지만 역시 어떻게 보는가가 더 감동적이라서, 치밀하게 계산되고 지적으로 긴장된 어른이 쓴 시들도 감동적이지만, 일기처럼, 노래처럼 제약없이 강박관념없이 자유로운 어린이의 시선이 더 감동적이었다. 어찌 한 마디 한 마디 이렇게 다 시가 된다냐!!

 

요즘 어린이들이 쓰는 시는 어떨까, 하고 요새 동시집 한 권을 펴서 아무데나 읽는데 어쩜 너네들 내 초딩 때랑 똑같냐. 왜 반복이 시라고 생각될까. 편집자 머리말을 읽으니, 그네도 아이들 시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슬프다. 내가 느낀 걸 쓰기보다 어른이 쓰는 걸 따라 쓰고, 내가 느낀 걸 표현할 때도 포맷에 갇혀서 쓴다. 안 그런 시들도 있겠지? 몇 개 읽다가 덮어 버렸으니.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을 전수 좀 받으셈~~~ 도대체 잘 쓴 시 모아놓은 시집을 그러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른들이 바보같이 잘못 고른 건지...

 

어른이 되면 이런 시선을 유지하기가 힘든 걸까? 표현하는 법을 까먹어서 느끼는 것까지 까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이처럼 맑고 아름다고 싶어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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