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

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01
    걸리버 여행기
    뎡야핑
  2. 2004/09/01
    [남의 책읽기]위선적인 인권의 역사의 역사가 주는 교훈
    뎡야핑
  3. 2004/09/01
    고전 읽기의 즐거움
    뎡야핑
  4. 2004/09/01
    시인은 숲을 지킨다
    뎡야핑

걸리버 여행기

  • 등록일
    2004/09/01 21:57
  • 수정일
    2004/09/01 21:57
  • 분류

 그래, 내가 죽였소! 그가 나의 아버지라고? 흥, 그는 단지 야후일 뿐이오. 물론 당신도 야후지. 어떻게 죽였느냐고? 이미 보지 않았소? 좋소. 당신이 알고 싶은 모든 걸 다 얘기해 줄테니 미안하지만 좀 떨어져 앉아 주겠소? 당신한테서 나는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으니.
 그래, 대체 뭘 알고 싶은 것이오? 살해 동기? 글세. 나도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우린 식사 중이었을 것이오. 아, 당신도 알겠지만 그는 꽤나 미쳐 있었소. 아마도 그가 집에 돌아온 이후로 5년만에 최초로 함께한 식탁일 것이오. 그는 연신 인상을 쓰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짜증났던 것같소. 들고 있던 나이프로 그의 목을 세 차례 찍어내렸소. 왜 그랬느냐고? 글세, 단지 짜증이 좀 났었다니까. 충동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은데, 음-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오. 그가 인상을 쓰고 있었단 것 외에는 잘 모르겠소. 그의 목을 찌르니 그는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소. 나는 그를 올라타고 그의 얼굴을 되는대로 마구 찔렀는데 나이프가 잘 들지 않아 깊히 박히진 않고 얼굴에 상처만 내더군. 그래서 칼로 그어 버렸지. 어깨를 그으니 어깨가 오려지더군. 왼쪽 쇄골뼈 밑을 깊숙히 찔러 반대쪽으로 그었소. 물론 나이프가 들지 않아 여전히 애를 먹긴 했소만은. 겨드랑이부터 허리를 찢는데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소. 잠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숨통을 확실히 끊어버릴까 하다가 그를 더 찔러 그의 가죽에 상처를 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거든. 계속 껍질을 벗겼지. 그 때 그 껍질로 무얼 하려는 건 아니었소. 그냥 껍질을 벗기다 보니 장인 정신이 생기던데. 정성껏 오렸지만 쓸만한 껍질은 배와 등 뿐이었소. 한참 오리다가 문뜩 고개를 들어 보니, 꽥꽥 소리를 지르던 어머니와 동생들은 보이질 않았소. 이미 당신들을 부르러 갔던 모양이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다가 가죽으로 배를 만들어 멀리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집안의 야후들을 찾기 시작했소. 시간이 얼마나 지난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 그들을 찾으려 돌아다니는데 당신들과 그들이 함께 나타났소. 분명히 말하건대 난 가죽이 필요했을 뿐이오. 그것이 어머니에게 달려든 이유라고. 당신들만 가만히 있었어도 난 우리집 야후들로 멋진 배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내 얘기는 이게 끝이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도망갈 의사가 없었소. 지금도 없고. 그러니 제발 부탁컨대 저리 좀 가주시오. 역겨운 냄새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니 말이오.

 

2001/03/26

 

 

---

크헉 다시 읽기 싫다 이것도 남겨둔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크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남의 책읽기]위선적인 인권의 역사의 역사가 주는 교훈

  • 등록일
    2004/09/01 13:04
  • 수정일
    2004/09/01 13:04
  • 분류

당대비평 원고

2003. 8. 13

 

위선적인 인권의 역사가 주는 교훈

 - 커스틴 셀라스의 [인권, 그 위선의 역사]를 읽고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www.hrights.or.kr

 

中에서

 

 

 인권운동세력이 고스란히 진보운동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을만큼, 한국에서의 인권이 현실정치와 상당한 거리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주고 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는 ‘간첩죄로 17년을 복역하였고, 아무런 공직에도 취임한 적이 없었던(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인사이고, 가장 대표적인 인권단체들도 스스로 ‘진보적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랜 기간 파쇼적 폭압을 겪었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인권이 운동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고, 서방의 열강들이 보여주었던 왜곡사례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시절도 얼마남지 않았다. 김대중정부에 이어 노무현정권도 인권과 현실 정치의 끈끈한 섞임과 인권에 대한 왜곡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공무원노조도 안되고, 파업에 대해서는 연일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고, 감옥에는 다시 학생과 노동자들로 채워지는 상황, 생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가족들이 줄을 잇는데도 정부는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기업할 권리,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제약할 권리, 자유롭게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을 주며 비정규직으로 혹사시켜도 될 권리만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정책이나 행정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인권’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빈도가 더욱 잦아질 것이다.


 당장 노무현대통령은 “나도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나도 노동운동 해봤다”면서 5.18 묘역에서 구호 몇 번 외친 일이나, 한총련 학생들이 미군기지에서 벌인 비폭력 퍼포먼스에 대해 ‘난동’이라고 규정하고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흥분은 당장 대규모 검거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나서서 헌법 19조와 21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있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