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

  • 등록일
    2004/11/20 14:41
  • 수정일
    2004/11/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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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란에 처음 쓰는 시집이네.

이오덕 선생이 30여년 전 가르친 청리 초등학교 아이들의 시집.

꽈광! 감동의 물결이었다. 사야지.

 

일곱살 여덟살 때, 우리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는데 언니에게 동시집이 한 권 있었다. 내가 읽을 책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 시집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다가 공책을 마련해서 시를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고쳐서 적어보고 몇 편 새로 쓰기도 하고. 그 때의 심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굳이 안 적어놔도 될 정도다. 시는 다 까먹고 단 한 편만 생각나지만, 암튼.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며 국어 수업 시간에 시를 배웠다. 시를 배우면서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나는 시를 거의 증오했다. 시의 형식이라고 배워지는 것들 - 운율, 각운, 대구법 등등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면서 시를 읽고 이해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너무 싫었다. 언어영역에서 시는 다 틀린 적도 많았다. 그러고보니 대머리도 그랬다는데.

 

그나마 시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것이 자유시였지... 자유시도 시인 이상 시의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고도 배웠었지. 제길 쓸데없는 거 가르치긴.

그래서 초딩 때부터 쓰는 시는 전부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기형적 형태였고 초딩 5, 6학년 때 문집을 편집할 때 내 시는 싣지 않았다. 너무 꼴보기 싫어서.

 

그러다가 왜 문학동아리에 들어가서 시를 쓰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거기서 많이 얘기하고 읽으면서 생각도 많이 변하고...

 

이 시집의 신선함이 가히 꽈과광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함박웃음을 머금고-ㅅ- 시를 읽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대충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지만 역시 어떻게 보는가가 더 감동적이라서, 치밀하게 계산되고 지적으로 긴장된 어른이 쓴 시들도 감동적이지만, 일기처럼, 노래처럼 제약없이 강박관념없이 자유로운 어린이의 시선이 더 감동적이었다. 어찌 한 마디 한 마디 이렇게 다 시가 된다냐!!

 

요즘 어린이들이 쓰는 시는 어떨까, 하고 요새 동시집 한 권을 펴서 아무데나 읽는데 어쩜 너네들 내 초딩 때랑 똑같냐. 왜 반복이 시라고 생각될까. 편집자 머리말을 읽으니, 그네도 아이들 시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슬프다. 내가 느낀 걸 쓰기보다 어른이 쓰는 걸 따라 쓰고, 내가 느낀 걸 표현할 때도 포맷에 갇혀서 쓴다. 안 그런 시들도 있겠지? 몇 개 읽다가 덮어 버렸으니.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을 전수 좀 받으셈~~~ 도대체 잘 쓴 시 모아놓은 시집을 그러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른들이 바보같이 잘못 고른 건지...

 

어른이 되면 이런 시선을 유지하기가 힘든 걸까? 표현하는 법을 까먹어서 느끼는 것까지 까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이처럼 맑고 아름다고 싶어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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