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절망에도 관객이 필요

  • 등록일
    2006/05/12 13:06
  • 수정일
    2006/05/12 13:06
  • 분류
    우울한일기

숭어 시 갈증이며 부드러움인에 "고통을 연마하는 불온함 밤"이라는 구절이 있다.

뭐 지금 쓰는 글은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그냥 깜짝 놀랐다.

 

평택에 관한 진불의 거의 모든 글을 읽었는데, 나는 예전에 타인의 관람을 의식하는 고통과 절망의 드러냄은 뭔가 조금 덜 진실되거나, 드러낼 정도만큼만 고통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이번에 정말 놀라고 허탈하고 절망하고 뭐 그랬다 말도 하기 싫었다 근데 진불에서 나와 같은 절망감을 드러내는 글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고통 속에 제3자의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에.

 

숭어 시에서 고통을 연마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좀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시를 쓸 때마다, 일단 괴로움을 마구 써놓고 시답게 멋지게 퇴고를 하면서 내 괴로움을 이딴 식으로 포장한다는 것에 구역질나고 추잡하다고 느끼고 그랬다. 거기에 대해서는 퇴고가 괴로움을 더 멋지게 표현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욱 정확한 나의 마음을 찾는 거라는 아직 어렸던 숭어의 친절한 조언이 있었다.

 

그런 것은 정말 멋있구나! 근데 나는 그게 도저히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시는 안 쓰게 되었다. 적당한 고통은 매우 자주 드러내지만, 내가 나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진짜 절망은 아무한테도 말할 수가 없었다...기보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근데 나 이런 거 보면 결벽증이 있는 것 같아. 뭐야 짜증나

 

그래서 고통과 절망의 쇼, 나쁜 뜻이 아니고 옵저버를 필요로하는 표출같은 게 있구나하고 놀랐다고. 그것을 신승원은 위의 시에서 자세히 미세입자를 살펴보면 부드럽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절망을 보여주는 게 추한 게 아니라고. 나는 이번에 정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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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갖고 튀어라

무위님 대여 비디오/디비디 씨리즈 2탄!

 

우디 알렌의 돈을 갖고 튀어라를 보았다.

생각만큼 명작은 아니었다-_-;;

 

내가 우디 알렌을 좋아하는 건 그가 너무나 냉소적이면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 행복의 원천은 그의 돈이라고 본다-_-;; 부자인 그의 행복이 나도 좋다.

 

마치 엘튼 존의 your song을 들으면, 가사는 가난한 남자지만 노래만큼은 부티난다, 막 물흐르는 느낌도 나고. 우디 알렌은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둘이 조금 닮은 것 같다;;

 

근데 이 영화는 한 개도 안 행복했다. 그럼 안 돼! 우디 알렌 언제나 행복해 달라긋!

그러나 부인 캐릭터는 역시 좋았다, 엉뚱미녀>ㅅ< 진짜 우디 알렌 여자취향 전형적이야. 맨날 똑같애=ㅁ= 하지만 지금 애인 순이씨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

 

두 번 미친듯이 웃었는데 한 번은 열심히 비누를 갈아서 권총 모양으로 만들고 구두약을 시커멓게 발라 탈출을 시도했는데 비가 와서 손에서 거품이 마구 나고 다시 감옥에 끌려들어갈 때-_- 프흐흐 글고 간수들 속옷 훔치려고 죄수복 속에 입어서 마치 뽀빠이처럼 우람한 모습이 되었을 때.. 미치는 줄 알았네, 웃겨서

 

안경 밟는 것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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