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치비타 디 바뇨레조

  • 등록일
    2016/10/16 06:18
  • 수정일
    2016/10/16 06:21
  • 분류
    여행

다른 버스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왼갖 안내에 따르면 오르비에토에서 하루에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버스 잡아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는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여러 모델 중 하나로 유명하다. 가뜩이나 사방이 절벽인 작은 마을인데 그나마도 무너져서 더 작아졌다. 지금은 보수 공사를 해서 안전하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도착 즈음에 보면 다리 아래에 시멘트가 흉하게 덧발라진 걸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어떤 보수도 이런 식으로 미관을 해치는 걸 본 일이 없어서 의아했다.

 

치비타와 바뇨레조는 사실 다르다. 바뇨레조라는 크고 비교적 신시가지랄 수 있는 마을이 있고, 치비타는 그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돌아보는 데에 15분도 안 걸린다더니, 그냥 걷기만 할 거라면, 정말 그랬다. 무슨 꿍꿍인지 최근 입장료 3유로를 받기 시작했다. 마을 보수를 위해서라는데, 많은 집이 부자들 별장이라는 얘기와 상충된다. 상충될 건 없나? -_-

 

오르비에토에서 버스 타기

 

오르비에토의 구시가지는 오르비에토 기차역에 내려 맞은 편의 푸니콜라레(등산 열차)를 타고 5분간 올라야 나온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에 가는 버스는 푸니콜라레를 타고 올라서 내린 카엔 광장(Cahen Piazza)에서 출발해, 오르비에토역을 거쳐, 중간 중간 오만 군데 서면서 달려간다. 그런데 카엔 광장에서 도대체 어디서 타는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푸니콜라레 매표소에서 물어보니 다른 회사라며 더이상 물을 여지도 안 주고 쳐다도 안 봤다. 기분이 상해서 더 묻지도 않고 여행책자랑 인터넷 검색, 다른 버스 회사의 기사님들께 물어보며 알아보는데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일단 티켓은 카엔 광장 왼쪽편, 오르비에토의 주요 길인 Corso Cavour에서 조금만 가면 나오는 타바키에서 편도 2.2유로로 구입해 뒀다. 타바키는 버스 어디서 타는 거고 시간표 어디서 확인하냐고 물으러 간 건데, 버스 티켓을 판다며 준 다음 시간은 탑승장에 있다면서 또다시 대답을 안 해줬다. 아.. 진짜 이렇게 황당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기타 여러 사람에게 미친듯이 길을 물어도 못 알아내서 결국 안전하게, 등산열차를 타고 내려가 기차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돌아올 때 보니까 탑승장이 변경된 것 같다. 너무나 빡이 치는데, 버스 회사 홈페이지는 이태리어로 된 pdf만 주고, 카엔 광장으로 검색도 안 되고.. 아 몰라 다시 생각해도 화딱지 난다. 여기에 그 버스 정류장의 위도 경도를 표시해 둔다: 42.722695,12.117536 커다란 주차장에 과연 버스 정류장 표시가 있었다 (이태리어로 fermata)

 

버스 회사는 Cotral사고 파란 차다. 

 

마침 나는 하교 시간에 탄지라, 오르비에토 역 다음에 어떤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잔뜩 실어 가며 한두서너명씩 여기저기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다른 주에서까지 여기로 학교를 와야 하다니 안타까운 한편으로 그래도 여기저기 젊은 피가 살아가는 게 보기 좋더라는.. 여튼

 

바뇨레조 종점에서 내리는 그 자리가 오르비에토로 돌아가는 기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치비타 앞까지 데려다주는 마을 버스 같은 것은 과연 여러 안내문에 적힌대로 잘 안 다녀서 걸어갔다. 나중에 보니 완전 만원 버스였다. 다리 아프면 기다려서라도 타야지 별 수 있겠는가..

 

치비타 구경

 

치비타 가는 길에 벨베데레 까페가 있는데 거기 전망대도 있는 모양이다. 여행 책자를 대충 본 탓에 전망대는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거기였... ㅠㅠ 높은 곳에서 치비타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걸 놓쳤다.

 

치비타는 놀랍게도 2500년 전 에트루리아인들이 살기 훨씬 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성벽 및 집 모양이 갖춰진 건 중세고, 옛날엔 이보다 넓었다고 해도 이런 깎아지른 곳에 와 살던 이들은 과연 어떤 상황이었는가 궁금했다.

 

성당 앞 피아짜(광장)는 역대급으로 조그마하다. 건물들은 다 이쁜데, 길들이 연결이 안 되고 다 막다른 길이다. 골목을 들어가면 대부분 여긴 사유재산이다, 란 팻말에 막힌다. 실거주자는 적어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만큼 까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엄청 늘어나 조용한 마을을 즐기기는 어렵다. 관광객 만큼 일하는 사람도 많다. 

 

입장료가 있어서 그런지 마을 초입구에 공중 화장실은 무료다. 내가 갔을 때 화장실 문은 고장났지만 냄새도 안 나고 깨끗했다. 지도는 안 봤는데 그냥은 화장실 표시가 따로 없어서 로컬에게 물어봐야 한다.

 

리코타 치즈와 젤라또를 파는 가게가 있길래 안내문을 잘 읽지 않고 치즈랑 젤라또를 같이 주겠거니, 하고 3유로나 주고 시켰는데 그냥 리코타 치즈였다. 안내문을 자세히 보니 현지의 양젖으로 만들었단다. 토핑으로 꿀과 시나몬을 골랐는데 완전 최악의 조합이었다. 아니 그보다 리코타 치즈가 넘나 내 입맛에 안 맞고 냄새나고 이게 뭐야... ㅠㅠㅠ 이태리 와서 첨으로 반도 못 먹고 버렸다. 첫술부터 '이건 아니다' 알았지만 돈 아꾸워서 꾸역꾸역 더 먹었더니 내내 속이 안 좋았다 -_-

 

성당은 작은 마을임에도 제법 크다. 어느 성당을 가도 이 정도는 된다. 다만 금칠된 그림과 금장식 없이 소박한 모양이 참 좋았다. 오르비에토 성당들도 그렇고, 이쪽 지방은 프레스코화가 대단히 훼손돼 있는데 굳이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맨살이, 아니 뼈가 드러난 것 같은 모습으로 그 뼈가 풍화되고 이제 아프지 않은 것 같은 느낌으로, 그대로 둔 게 나 보시기에 참 좋더라...<

 

집들이 다 예쁜데 막눈이라서 중부 지방의 집들이랑 뭐가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느껴지고 근데도 너무 예쁘고 좋았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시간이 좀 떴는데, 나는 그냥 이런 마을 구석진 데 찾아서 조용히만 있어도 좋겠더라. 아니면 와인바 있던데 와인이나 주구줄창 마셔도 갠춘..

 

바뇨레조

 

치비타에서 나와 버스타는 곳까지만 봤을 뿐이지만 바뇨레조도 마을이 예쁘다.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안 예쁜 마을이란 없는 것.. (로마 제외 -_-) 버스 정류장 아주 가까운 곳에선 까페를 못 찾아서, 버스 왔던 방향으로 좀 내려가다보니 bar가 있었다. 역대급으로 저렴하다. Peroni 작은 거 한 병을 1.5유로에 마셨다. 말이 됨???? 아란치니(쌀+치즈 튀김)도 1유로 내고 하나 먹었다. 어머니 드신 작은 컵 콜라는 비록 김이 빠졌으되 0.5유로였다. 의자에 앉아 따로 자리세도 내지 않고 20분 정도 앉아 있다 버스 타러 갔다. 바뇨레조 같은 마을도 한 번쯤 들러서 지내보고 싶다. 그런 기회가 올까. 치비타 안에 숙박업소는 단 1개 뿐인데 거기 묵어도 괜찮고, 바뇨레조에서 묵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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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케쥴을 잘 짜야하는 부분

  • 등록일
    2016/10/16 04:59
  • 수정일
    2016/10/16 05:03
  • 분류
    여행

우리 외할머니는 내 얼굴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신다. 얼굴이 크고 둥글어서 멀리서 봐도 잘 보인다며 너무 예쁘다 하신다 ㅋㅋㅋ -_- 할머니보다 젊은 연세 중에서도 날 보고 진심 이쁘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같은 이유로ㅋㅋㅋ -_-)

 

하지만 전에 함께 살던 (구)새어머니나 우리 시어머니는 화장하지 않는 나를 예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왜 화장을 안 하는가? 이해를 못 하신다. 여행을 와서 시어머니 말씀하시길 너가 꾸미는 데에 신경 쓰고 그러는 타입이면 아 나랑 여행 오자고 하지도 않았겠지, 라며 니가 안 꾸미는 걸 ㅇㅈ까진 아니고 포기를 넘어 장점을 발견했다는 듯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저도 꾸며요! 귀찮아서 화장을 안 할 뿐이에요! 하고 항변했다.

 

처음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서, 어머니는 오자마자 녹초가 되셨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보고 싶고 여차저차 어머니는 무리하고 나는 아무 것도 구경 안 하는 듯한 상태가 돼서 초반부터 바로 서로에게 화가 났다. 언니하고 ㅁ이한테 하소연을 -_- 하는데 언니가 널 위한 여행이 아니잖아, 그러고 ㅁ이가 싸우지 말라고 계속 걱정해서;; 아 내가 어머니 페이스에 잘 맞춰야지 했다. 지금은 전보다 훨씬 잘 다니신다. 어머니 역시 내 페이스에 맞추고자 노력하시는 부분. 일단 뱅기 타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로 또 여기저기 이동하느라 초반에 힘드셨을 것..

 

그렇다고 우리가 막 허물 없는 사이는 아니라서 서로 짜증과 화를 꾹 누르고 얘기했지 한 번도 싸운 적은 없다. 언니하고 다니면 존나 싸우는데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게 화를 누르고 지내던 초반에 어머니가 여행 일정을 왜 이렇게 길게 잡았니, 집에 돌아가고 싶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진짜 너무 화가 나서 그러게요, 괜히 길게 잡았어요 하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내내, 일정을 다 채우지 말고 어머니 먼저 귀국하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냥 혼자 가시라고 하면 서운해 하실 게 뻔하니까, 뭐라고 말해야 될지 머리를 쥐어짜면서 구경은 또 다 함<

 

뭐라고 말해야 관계가 파탄이 안 나고 먼저 가시게 할까? 일단 그러려면 공항까지 내가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어디에서 일정을 조정하는 게 좋을까? 과정은 답이 안 나오는데 결론은 한결 같았다. 그런데 최소한도로 기분이 안 상할 정도의 기름칠 된 멘트를 생각해내지 못한 채로 사이가 회복됐다. 여행이 다시 즐거워졌다. 됐고 초반에 무리하게 일정 짠 내 잘못이다.

 

오늘 대화하면서 그때와 또 같은 말씀을 하셨다. 다만 받아들이는 내가 달랐다. 너는 집에 안 돌아가고 싶니? (ㅁ이는 보고 싶은데 집 생각은 안 나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이렇게 집을 오래 비운 적이 없어서 난 집 생각나고 집에 가고 싶다 (안 해 보면 그렇죠, 자꾸 해 보면 안 그래요. 아버지가 걱정되세요?) 은지-아니다라는 경상도 사투리-, 아빠는 하나도 걱정 안 되는데 집이 걱정된다, 지진 났나, 태풍 왔나, 맨날 검색해 본다 (쇼핑하러 가면 집 생각 안 날 걸요-다른 여행자들처럼 우리도 명품 아울렛 가보기로 함-) 그건 그렇다 ㅋㅋㅋ 그래도 집이 제일 편하고 집에서 쉬고 싶다

 

처음 대화에선, 여행 준비하는 긴 기간 동안 왠만한 건 어머니 의견 묻고, 어떻게 할 거라고 다 알려드렸는데, 이제 와서 나를 탓하는 이 말투는 무엇인가 하고 화가 났었다. 오늘 대화에선 그냥 여행이 아무리 즐겁고 숙소가 좋아도 이런 삶이 익숙하지 않고, 완전히 마음 놓고 편안해질 수 없는 어머니의 상태를 이해하고 있어선지 그냥 재밌었다. 사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건 성격 탓이겠지. 우리 언니도 같이 해외 여행 가면 많이 불안해하는 타입이라서. 맨처음 해외 여행 갔을 때 도난당할까봐 내내 신경 곤두서 있는 게 이해가 잘 안 갔다. 나랑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본인 말씀으로도 '쓸데 없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시고.

 

남은 일정엔 쇼핑이 몇 차례 들어 있어서 더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초반을 그냥 로마에 다 때려박고 쇼핑도 하고 놀멍 쉬멍해야 하는 거였어.. 패키지 여행은 맨날 보따리 싸야 한다며 자유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되신 어머니는 돈만 있다면 로마 같은 데서 한 달 동안 로마만 구경하면 좋겠다고 전향적인 발언도 하셨다. 각 개인의 특수성을 포함해 나이대에 걸맞게 기획해야 한다. 또한 나자신의 특수성 역시도... 나 자신의 특수성도 많이 알게 됐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하는 것. 가끔 어떤 로컬과 대화를 해보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는데 뭐 아무것도 못 하니깐... 암튼 뭔가 나만 착한 것처럼 썼지만 나도 화는 안 내도 짜증 내고< 그랬었다 오늘도 짜증 조금 냈지만; 내일부턴 짜증도 안 내고 효부 노릇 지대해야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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