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슈나이더 인터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관련된 것 발췌

요즘 베르톨루치가 강간씬에서 배우를 진짜로 강간하게 했다는 글이 계속 공유돼서 클릭했다가, 베르톨루치 2013년 인터뷰(유투브)를 보고 충격받았다. 실제로 대본에 없었고, 그래서 배우는 몰랐고, 굴욕감과 분노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자의 진짜 굴욕감과 분노를 보고 싶었다고, 그 배우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단다. 이게 68 남성 공산주의자 세대의 일반적 의식 수준인가. 권위주의자라서 공감 능력 떨어질 뿐인 건가. 사람을 이렇게 그저 대놓고 도구로 대할 수가. 인간을 얘기하기 위해 인간을 비인간으로 대할 수가. 슈나이더 사망 2년 뒤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 뒤로 평생 자길 미워했다면서 저런다.

 

최근에 다시 논란이 되자 버터가 사용된다는 게 합의가 안 된 거지, 성폭행 장면 자체는 대본에 있는 거라고 해명했다는데.. 나는 실제 인간에게 진짜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도록 만든 것 그 자체가. 문제라고. 난 그거에 충격받은 건데. 연기도 예술도 아니고 그냥 인간 정신을 직접 죽이는 짓을 한 거라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주인공 마리아 슈나이더는 2007년 인터뷰에서 당시 말론 브란도에게 강간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데뷔작인 이 영화에 대부분 나체로 나왔지만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은 뒤 그런 역할의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왔지만, 다시는 나신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3년 전 말론이 죽은 뒤 영화를 다시 봤는데 저속했다. 베르톨루치는 과대 평가됐다고 본다. 그 영화 이후 그만큼의 영향을 가진 영화를 만들지도 못 했다."

 

베르톨루치는 기분이 변덕스러워서 어느날은 다정하게 대해주고 어느날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며 눈치 보게 만들고. 심지어 말론 브란도마저 감독한테 조종당하는 느낌이었다는데 아무 경험 없는 본인은 어땠겠느냐며.. 

 

"그 씬은 원래 대본엔 없었다. 사실은 말론이 생각해냈던 거다. 나한테는 씬 촬영 직전에 얘기해서 매우 화가 났다. 에이전시나 변호사에게 셋트장에 오라고 전화했어야 되는데 (중략) 당시엔 그런 걸 몰랐다. 말론은 걱정말라고 그냥 영화라고 말했지만 촬영 동안 진짜로 하는 건 아니었어도 진짜 눈물이 터졌다.

 

굴욕적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말론과 베루톨루치에게 강간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촬영 후 말론은 날 위로하거나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촬영은 원 테이크로 끝났다."

 

하지만 말론 브란도랑은 친구로 내내 지냈고, 그와 상대배우가 된 것도 그 영화 찍은 것 중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 대해서는 한동안 얘기할 수 없었단다.

 

"베르톨루치가 날 다룬 방식을 정말 용서할 수 없다. 17년 전에 도쿄에서 만났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영화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나는 2,500 유로를 벌었을 뿐. 게다가 베르톨루치는 또 공산주의자였다!"

 

갑자기 유명세를 치루며 적응하지 못 하고, 유명세를 즐기지도 못 하고 마약으로 도피하고, 자살을 몇 번 시도하기도 했고, 친구 몇몇이 마약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다행이라기보다.. 어디서 들었을 땐 과장 아닐려나 했는데 본인 인터뷰에서 말한 거였네... ㅠㅠ

 

인터뷰 당시 모습. 출처는 해당 기사

 

뒤늦게 화제가 돼서 알게 됐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분노하고 고인이 편히 쉬시길 바란다. 베루톨루치 영화는 영원히 못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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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다시 난민이 된 난민들

워커스에 쓴 글이다. 시리아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전화를 피해 다시 난민이 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2012년부터 듣고 있었는데, 가자 지구로까지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 점에 포커스를 맞춰서 썼다. 글 링크

 

하지만 불행 경쟁으로 보이면 안 되는데 적절히 쓴 건지 모르겠다.. 지금 알레포는 2014년 여름의 가자랑 다를 게 없는데... 온갖 얘기 다 쓰고 싶었지만 다 말할 자격도 없고 다 말할 만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가자에서 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걸 당사자들의 말을 빌려 알레포보다 지옥 같다고 표현했는데.. 괜히 쓴 것 같고.. 알레포라고 해도 시기별 또 지역별로 겪는 게 다르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가자보다 더 참혹한 상황일 수도 있는 건데. 아니 그런 비교를 하자는 게 아니고,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게 당연하지 않게 내 글이 불행 경쟁으로 비춰질까봐.. 가자 출신으로 알레포에서 보도 중인 기자를 팔로업하고 있다. 내용을 좀더 읽고 나중에 공유해야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출처 “팔레스타인에 돌아오길 꿈꿨었지만, 이제는 야르무크로 돌아가길 꿈꾼다.” (Mohammed Asad)

 

 

글을 쓸 때는 2014년 가자 침공으로 살해당한 사람이 2200명이라고 기억하고 있었고, 그래서 단순 검색으로 숫자를 확인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2500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렇지.. 당시에 바로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부상으로 길게 고통받다 죽는 이들이 있고... 당시 통계만 기억하고 있었네..

 

중동 이슈 관련 올 한 해는 무력감을 많이 느꼈는데 요즘 시리아를 보며 그 무력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할 수 있는 걸 한다는 건 그저 자기만족 같고.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데.. 시리아 관련 질베르 아슈카르 인터뷰가 읽을만 했는데 그거라도 번역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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