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영향

  • 등록일
    2007/05/08 20:28
  • 수정일
    2007/05/08 20:28
  • 분류
    마우스일기
아! 하고 자아를 각성(?)했던 게 12살이다. 그 전까지는 먹고 놀고 자고 동물같이 살았다. 그러다 12살에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갑자기 나는 나라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열두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얼마나 다른가 가끔씩 재본다. 그럼 생각이 이렇게 변했구나, 하고 반추하다가도 생생하게 나를 인식한 그 때로부터 여전히 기본적으로 같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은 분명히 선생님과 상관없이 운동장에서 온 것이지만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12살이던 5학년 때 선생님의 교육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다. 조를 모둠이라 부르며 책상 모여 앉고, 현장(?)이나 도서관에 다니며 공동으로 레포트(!)를 작성하고,  발표 등 수업참여도에 따라서 사과나무를 만들어서 결산에서 제일 잘한 모둠이 선생님과 어딘가 놀러가는 상을 받고, 1/2학기 모두 문집을 만들고, 모둠별로 일기를 써서 공유하고, 책소개를 하며 돌려 읽고, 음악책에 없는 노래를 배우고...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이 다른 반과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선생님이 얼마나 다른지는 몰랐다.


내가 중고등학교 내내 몇몇 선생과 불화를 겪은 것은, 지금 판단할 때, 나는 그들과 내가 동등한 지위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서... 싸가지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의견을 말하고 굽히지 않았을 뿐인데 선생들 존나 우겨=ㅅ= 내가 수업시간에 틀리게 가르친 걸 지적하자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 여편네는 아직도 느므 싫다. ㅁㅊ

그런데 나는 왜 그들과 나를 동등하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6학년 때도 그것때문에 엄청 혼난 적이 있는데. 교실 문 박차고 나가버렸음=ㅁ= 4학년 때까지는 반항한 기억이 없다. 동물-ㅁ-이라서도 그랬지만..

이제야 깨달은 게 선생님이 반 애들과 동등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지가 잘난 줄만 알고ㅠㅠ 그 전에는 담임들이 내게 고압적이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중고등 시절에는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인 선생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다 선생님의 영향이었어ㅠㅠㅠ 난 내가 잘난 줄만 알고 ㅇ<-<

선생님은 한번도 자기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한 적이 없다.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싸우고 토론도 하고 편지도 쓰고 그렇게 변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내가 고집이 너무 세서 선생님이 옳다고 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않아서였지 결코 나에게 강요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엔 2학기가 지나면서 선생님이 아주 좋아졌었다. 집에도 한 번 찾아갔는데, 선생님 안 계셨심=ㅁ=

이것으로 나에겐 커다란 미스테리가 풀렸다. 왜 나는 지위고하를 인정하지 않을까? 왜 애초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을까? 내가 너무 잘난 거? ㅋㅋㅋ 막 이랬는데<<<<

선생님이랑 소리지르면서 싸웠던 기억이 있다. 많이 그랬던 것 같다. 일기에다가도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한가득 적어버리면 한가득 답변을 써주시곤 했다. 내가 선생님을 얼마나 괴롭혔을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 죽겠다. 나랑 사이가 나쁠 때 봉산탈춤 보고 감동해서 쓴 일기에다 선생님이 좋았겠구나.라는 식으로 덧글< 달아줬던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모든 아이들을 동등하게 배려하고 한 아이에게도 한 가지 감정만으로 일관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혹시 나때문에 울었다면(울었을 거라 생각된다) 백배사죄하고 싶다ㅠㅠ

백배사죄하고도 싶고 선생님 결혼하셨을까 궁금해서 시교육청 홈피에 들어가서 찾아봤는데, 같은 이름의 같은 나이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그 땐 정확히 나이를 몰랐는데, 나를 가르칠 때 선생님은 24살이셨다.. 아.


뭐 스승의 날이라고 생각난 건 아니고, 어제 교생실습 다녀온 상미랑 얘기하다가 번뜩 깨달았심
만나고 싶은데 순이가 안 만나는 게 낫지 않냐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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