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와 나

미국 미시간주의 플린트는 세계적 기업 GM이 태어난 곳이다. 플린트의 경제는 GM에 기반하고 있고 모든 주민이 GM과 공생(?)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이 다큐를 찍은 마이클 무어의 모든 가족도 지엠에서 일했을 정도다. 감독 자신도 취직했다가 단 하루도 출근 안 하고 관둔 전력이 있단다.

지엠이 원래 자동차 회사구나. 난 그런 것도 몰랐고? 지엠 대우는 알지만. 지금은 지엠 대우지만 원래 대우다. 나는 인천 부평에서 어릴 때부터 자랐는데 우리 가족도 우리 이웃도 거의 아니었지만 부평 경제는 대우에 기반한다, 대우 망하면 부평도 망한다 이런 얘기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그리고 처음 봤던 집회도 대우 노동자들이 부평역 앞에서 하는 거였고. 그 앞 광장은 완전 사라졌다.

우리 아빠는 대우 제품이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 지역사랑의 정신도 실천하셨다. 지금은 아니다. 옛날엔 정말 가족들이 질릴 정도로, 심지어 피아노 사달랬더니 대우 디지털 피아노를 사오는 엽기를 저질렀을 정도로 매니아셨다. 우리 아빠가 특이하기도 한데 대충 친구네 가도 가전제품은 대우가 전반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지역의 대우 의존도가 점점 낮아졌고 아빠도 합리적인 소비자로 거듭났다.

마이클 무어 정도는 아니지만 대충 한 기업에 의존하는 마을 분위기 속에서 자란 나이기에 공감도 가고 더 재밌었다. 사실 난 지역경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거 같다. 지엠의 당시 회장 로저 스미스는 노동자 3만 명을 일거에 해고하는데, 그 중 1만 명이 플린트 사람이었다. 부연할 필요도 없이 플린트의 지역경제는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서 감독은 로저 회장에게 플린트로 와서 당신이 한 것을 좀 보라고 어떠냐고 하고 싶어서 그를 만나려고 애쓴다. 애쓰는 과정도 다 재미있었다. 주주로 위장하고 들어가서 발언권이 생겼지만 로저 스미스가 아마도 그를 알아보고 발언을 못하게 일정을 끝내버리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미국 노동자를 해고하고, 외국에 싼값으로 노동력을 사고 남은 돈으로 무기 사업 등 다른 사업도 하게 됐다는데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일자리가 생긴 지역의 사람들과 미국 노동자들은 연대할 수 있을까? 연대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여튼 연대하려고 해야겠지. 글구 계급 투쟁의 측면에서 지엠이 외국에 공장을 만들어서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은 전체적으로 좋은 걸까? 질문이 너무 평면적이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감독 코멘터리를 조금 봤는데 이 영화를 찍으려고 자기 가진 거 다 갖다 파는 눈물 겨운 노력을 했더라. 그런 노력이 값질 만큼 내용도 좋지만 무지 재미잇었다. 재미는 대폭소가 아니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거. 글구 자기랑 같은 의견을 찍으면 지루하다고 자기도 그런 영화는 안 본다고, 자기랑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찍는데 그것 참 좋았다. 내가 지루하다고 많이 느낀 지점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왜 당신인터뷰에 응했느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웃기다. 내가 너무 하찮아 보여서, 말해봤자 아무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ㅋㅋ 자신을 낮추는 좋은 방법이다 강추



(무위님께 몇 년 전 빌린 디비디다=ㅁ= 나머지 디비디들 빨리 보고 돌려드려야지 미친 나자신 퍽퍽퍽퍽퍽퍼겊거 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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