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폿용으로 다시 써봄

  • 등록일
    2004/09/30 13:05
  • 수정일
    2004/09/30 13:05
  • 분류

* 이 글은 뎡야핑님의 [이슬람 처녀 아제드의 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이슬람 처녀 아제드의 밤

 

 

"돈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 자매는 둘 다 매춘을 하는 셈입니다. 다만 한 자매는 단 한 사람의 고객밖에 없는데, 그는 돈도 지불하지 않고 사랑 외에도 떨쳐버릴 수 없는 다른 일을 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슬람 처녀 아제드의 밤'은 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현대적 상황과 주제에 맞추어 각색한 작품이다.
천일야화에서 전제군주 샤리야르와 그의 동생 샤 자만은 부정한 아내와 상간자들을 죽여 버린다. 거기에 샤리야르는 아내에게서 받은 충격으로 모든 여자는 더러운 것이라며 하루밤 처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다음날 더럽다는 명분으로 죽여 버린다. 현대, 모로코의 카말과 카밀 형제의 부인에 대한 복수는 현대판 왕이랄 수 있는 기업의 총수 카말이 천일야화의 샤리야르가 되어 매일 처녀와 결혼하고, 다음날 그 처녀를 헌신짝처럼 버림으로써 여자에게 나름대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샤 자만이 간통을 목격한 즉시 칼을 휘두른 데에 비해, 소설 속의 동생 카밀은 부인을 용서해 주고 내보낸다).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당한 여자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에 매일 이야기를 듣는 것을 조건으로 카말과 결혼을 한 영리한 아제드라는 처녀가 이야기로 카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천일야화에서 말그대로 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재담꾼 세헤라쟈드와 달리 아제드는 이어지는 한 가지 이야기로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어 카말이 당최 헤어질 수 없게 만든다. 나 역시 이야기 속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고 1 때 산, 아라비안 나이트의 야한 부분만을 집대성한 세 권 짜리 책의 그 마을 내지 그 나라 최고의 선남선녀가 만나자마자 눈에 불똥 튀겨서 같이 자거나 약간의 역경을 딛고 결혼한다는 얘기나 또 청소년 적합적으로 만들어진, 환상적으로 두드러지게 개연성 떨어지는 모험의 세계가 대거 포진하고 있는 원본 천일야화보다도 재미있었다. 아제드의 이야기는 리얼리티를 위해 동분서주하지도 않고 작위적인 면도 보이지만 동시대에 대한 재담꾼의 해석을 듣는 기분이 쏠쏠했다.

 

아제드의 이야기는 '모크하타르'라는 남자가 '주바이다'라는 정부와 대부호인 부인 파테마 몰래 여행 갔다가 사기꾼들한테 걸려 '주바이다'를 인질로 돈을 왕창 뜯기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대부호인 부인 몰래 돈을 구하다가 여의치 않아 부인의 보석을 훔치고, 알고보니 정부 '주바이다'는 사기꾼들과 한 패이며 그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라르비'를 짝사랑하고, '메사우'라는 경찰서장은 '모크하타르'를 돕는 척 전당포 주인에게 보석을 압류했다가 '주바이다'한테 도난당하고, '주바이다'는 사랑하는 '라르비'와 '라르비'가 사랑하는 청년 '파딜'과 함께 보석을 갖고 멀리 떠나다가 배가 난파당해 혼자 살아남고, '파테마'는 대부호의 지위를 이용해 남편 모크하타르를 내쫓고 잘 살아간다, 는 내용이었다.

 

책을 다 읽고는 씁쓸했다. 파테마가 남편과 사건 관계자 모두를 응징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가 돈이 많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취약하다는 점에서 파테마 식의 해결은 거의 불능에 가깝다. 이에 여자가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아제드의 경우처럼 슬기로 폭군을 제압하는 것인데 사회적 문제를 여성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당하고 사는 여성들은 스스로가 못났기 때문에 비천하게 사는 것이며 정작 가해자인 남편으로 대변되는 남성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기이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사회의 여성해방은 요원한 것인가?

 

맨 위의 따옴표 안의 말은 경관 드리스가 한 명은 매춘노동자, 한 명은 가정주부인 쌍둥이 자매 중 누가 매춘부라며 천시받을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한 것이다(모로코에는 포주가 없어서 비교적 매춘여성이 자유롭다고 한다). 드리스는 매춘 여성을 잡아와서 사진을 찍어 매춘부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데, 진한 화장에 질려 화장을 지우고 오라고 시킨 뒤 화장 지운 얼굴의 순수함에 감동하여 그 뒤로 맨얼굴 사진을 찍어서 얼굴만 방에 한 가득 걸어놓고 그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오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캐릭터이다. 예술가, 내지는 예술애호가란 역시 저런 사람인 것 같다. 예술을 일종의 관음이라 볼 때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더 나아가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끔 해 준다는 점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슬람 가부장 사회의 '남성'과도 소통의 가능성이 열린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고 연대의 시초인 것 같다.

 

원본 천일야화가 어떻게 끝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제드는 남편에게 순수한 사랑,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고 증오의 해소, 이런 걸 일으키지도 않고 '버림받은 여자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 것인가'를 주바이다를 통해 일깨워 준다. 깨달음을 얻은 남편에게 아제드가 요구하는 것은 그간 그가 버린 여자들 중 재취한 여자를 제외한 모든 여자를 다 데리고 와서 부인들로 구성된 '하렘'을 이루자는 것이다.


일부다처제의 질서 속에서 여성해방은 일부일처제를 쟁취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맨 위에 드리스가 말하듯이 결혼을 한 여자는 한 남자의 전용창녀로 살아가게 된다. 그 남자가 재력이나 여타 능력이 있어서 부인을 넷을 두든, 능력이 없어서 한 명만 두든지 그런 건 상관이 없다. 게다가 모로코에선 부인을 때리고 내쫓는 등 학대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작가는 여성해방을 위한 제3의 방법을 제시한다. 파테마와 같은 부자가 아니더라도, 아제드와 같은 지략가가 아니더라도 비록 남성이 장악한 이 세계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쟁취하지 못할지라도 모든 여성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것. 이에 여성은 스스로 연대할 것. 남의 손길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의 불합리한 상태를 용인하지 말고, 내 이웃인 여성을 매춘부라며 차별하지 말고 연대할 것. 아제드는 대부호의 정실부인으로 부와 권력을 장악하는 대신에 족히 30명은 될 전(前)부인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슬람 사회에서 가능한 여성연대의 일 전형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이혼 당한 여자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자립할 기반이 전혀 없는 모로코에서 사실상 그 여성들 모두를 끌어안는 것은 아직도 한 남자를 두고 여성끼리 암투를 벌이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인 양 매스컴을 통해 끊임없이 주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부다처제가 이슬람교의 교리는 아니라는데 이슬람권 문화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억압받는 현실에서 가장 억눌린 생활을 하고 있을 이슬람 여성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어떻게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이슬람 여성과의 연대와 소통을 위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그 과정의 일환으로 대화의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마음으로나마 연대하는 것. 그이상의 답을 아직 찾지 못해 답답하다. 


작가는 로트피 아칼라이. 역자는 안 써옴-_- 작가분 역자분 모두에게 감사를.

 

 

다시 쓴 거 더 잘 쓴 것 같아서 고치려다 귀찮아서 트랙백

내 글에 맨날 내가 트랙백=ㅅ=ㅋ

나의 레폿은 아늼=ㅅ= 책 한권을 대가로.. 비싼 거 받아야지>_<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