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Neco z Alenky, 1988

얀 쯔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앨리스!!!!!

보고 말았다! 크읍 감동의 물결이 넘실넘실~












 

반복 패턴

서랍을 열 때마다 손잡이가 빠진다든지 토끼 씨는 아이쿠 늦었다고 계속 시계를 보지만 시계는 계속 정지해 있다든지 호랭이인형과 목각 아저씨의 반복행동 등.

 

유주얼 써스펙트를 방불케 하는 엔딩!

단지 가위로 철컥철컥 목을 자른다고 아이들이 보기 부적당한가? 아이들이 봐도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들 보기 부적절하대서 앨리스가 다치는가 엄청 걱정하면서 봤네-_-

 

영화 다운받을 수 있는 곳 ☞ 고전명작 : 앨리스로 검색. 가입해야 검색가능=ㅅ=

영어 대사 뿐이지만 책에 나오는 대사랑 같다고 한다. 못 알아들어도 하등 상관없음.

 

쯔반크마이어의 인터뷰 기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앨리스(1)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앨리스(2)



이 글은 1988년 10월 19-26일 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얀 쯔반크마이어: Malice in Wonderland
by Geoff Andrew


--- 체코의 초현실주의 애니메이터인 얀 쯔반크마이어, 마술적이고 소름끼치는 화면으로 잘 알려진 그가 첫번째 장편 영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내놓았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무시무시한 효과로 결합해 낸 이 작품은 어린아이들을 소스라치게 하지 않을까? ----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영화화하는데 얀 쯔반크마이어만한 적임자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이 체코 애니메이터는 이미 <재버워키>를 자신만의 판타스틱한 버전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화의 차원들Dimensions of Dialogue>, <펀치 앤 주디Punch and Judy>, 그리고 <지하실 밑으로Down to the Cellar>등의 간결한 걸작에서 그가 이미 선보인 불길한 꿈의 세계는 캐럴의 뒤죽박죽된 세계의 이상적인 보완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숭배가 얼마나 크든지간에, 그에 대한 실제 접근 방식은 어떠했을까? 결국, 그는 초현실주의자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평균적인 서구 감독들에 비해 훨씬 더 지적인 표현을 구사하긴 했지만, 갈색 수트를 걸친 모습이 동유럽의 장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시종 위트가 넘치고 편안해 보였으며, <앨리스>에 대해 말하는 도중에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소름끼치는 유머와 인간 조건에 대한 심각한 통찰이 섬세하게 섞이는 가운데, 예술과 예술가는 서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쯔반크마이어의 첫번째 장편인 <앨리스>는 많은 찬사를 받은 그의 이전의 단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기괴하고 아름다우며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하여 캐럴이 쓴 글자 자체보다 그의 정신을 더 잘 담아낸 이 작품은,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만나 찬란한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캐럴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입니다." 쯔반크마이어는 말한다. "정신적으로 (내가 그보다 더 불안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강의 같은 편 둑에 서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둘 다 유아적인 면이 있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모욕적인 말이지요. 나는 어렸을 때나 커서나 앨리스 책을 여러 번 읽었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만들어진 상상력의 기본적인 모티프는 변함없이 남아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기들의 어린시절을 단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여겨 쉽게 내던져 버리거나, 아니면 일종의 황금 시기로 미화해서 감상주의에 빠지곤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걸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어린시절과 생생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캐럴의 책은 그 시절의 행동과 감정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고 꿈의 구조를 건드려 놓지요. 그것이 그 이야기에 대한 나의 응답의 출발점이 됩니다. 사실, 나의 <앨리스>는 부분적으로는 현실이 꿈과 융합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끝부분에서 앨리스는 꿈에서 깨어난 것일까요, 아닐까요? 반면에 내가 만든 <재버워키>는, 관습적인 내러티브는 아니지만, 한 어린이의 내면적 발전 과정에 대한 프로이드적 기록입니다. 호모섹슈얼리티를 지나 사도-매조키즘을 거쳐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쯔반크마이어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애니메이션이 유물, 죽은 동물, 식물, 광물같은 것에 새롭고 종종 소름끼치며 항상 놀라운 의미를 불어넣는 방식에 있다. 영화를 지배하는 사물들을 그는 어떻게 고르는 것일까? "나는 그것들을 수집합니다. 나의 아파트와 스튜디오는 항상 내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물건들로 가득차 있지요.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사람들보다는 죽은 물건들과 의사소통하기 때문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면 나는 네크로파일(시체애호증)이겠죠.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나의 내성적인 유년 시절에, 부분적으로는 공간과 방과 사물들이 - 그것을 만들고 만지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빨아들인 - 그들 자신의 수동적인 생명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믿음에 기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 속에서 그들을 움직임으로써 그들에게 온전한 생명을 주고 있는 것인가요?

쯔반크마이어는 웃는다. "그렇습니다."

<앨리스>는 무시무시한 유머와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찬 화면을 근사하게 제공해 준다. 그가 ICA Cinema에 간다면.... 아이들은 엄마를 부르짖으면서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흰 토끼는 우리의 주인공의 머리 위에 캠프를 치고 말뚝을 박으며, 그녀의 아마빛 머리털을 베어 불쏘시개로 쓴다. 개구리 전령은 그 끈적끈적하고 거대한 혀로 파리를 철썩철썩 때려잡는다. 앨리스 자신이 영화 첫부분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러분은 이제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확실히 성인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라고 쯔반크마이어는 주장한다. "캐럴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지니스이거나 회초리의 연장일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종류의 예술도 어린이들에게 부적합하다고 단언하는데는 회의적입니다. 어린이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대면했을 때, 그것은 유추에 의해 이해되거나 아니면 단순히 거부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매우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며 동물적입니다. 세상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욕망의 본질이 숨쉬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상력은 훨씬 더 자유롭죠."

그렇다면 앨리스를 연기한 소녀는 자신이 유일한 인간 연기자인 이 영화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쯔반크마이어는 슬프게 미소지었다. "반도 채 찍기 전에 아이가 질려한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하지만 앨리스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아이들은 아직 기본적인 경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표정이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6개월 전에 앨리스가 인형으로 변한 부분의 애니메이션을 찍은 다음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인형과 같은 금발의 여자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앨리스를 연기할 아이를 여러 명 두는 것까지도 고려했었지요. 어떤 점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앨리스를 연기하는 아이가 촬영하는 동안 이빨이 빠졌기 때문에, 대사를 하는 앨리스의 입이 클로우즈업되는 장면에서는 다른 여자아이를 썼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녀에게 촬영할 때마다 인공 이를 끼워야 했죠. 그리고 그녀가 자라나는데 맞추어 이빨 크기를 늘려야 했어요!"

나는 하루 종일 쯔반크마이어와 함께 앉아서, 그의 프라하에 대한 찬가와("마법과 연금술의 도시!"), 체코 초현실주의와 서구 유럽의 그것 사이의 차이에 대한 설명과, 그의 영화에 대한 공식적 반대에 대한 이야기(그의 영화중 몇 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와, 차기작인 에 대한 계획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질문이 남았다.

첫째, 그는 다른 애니메이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저는 큰 흥미가 없습니다. 나의 친구들은 주로 시인이거나 화가들이죠. 영화감독들 중에서는 브뉘엘, 펠리니, 조르주 멜리에스를 존경합니다. 애니메이터들은 비둘기 애호가나 토끼 사육사들처럼 자기들만의 닫힌 세계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애니메이션 필름 감독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애니메이션 테크닉이나 완벽한 환영을 창조해 내는 일보다는, 일상적인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초현실주의는 현실 속에 있는 것이지, 그것을 벗어난 곳에 있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그의 풍부하고도 도발적인 - 그리고 항상 명확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 작품 세계는 특정한 그 무엇에 대한 상징적인 우화로 읽혀질 수 있을까? "나의 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매뉴얼은 없습니다." 그는 미소짓는다. " 내 영화는 항상 몇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관객들이 각자의 주관적인 상징을 적용하여 작품을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정신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비밀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비밀이 없다면, 예술도 없지요."


기사 출처:
Jan Svankmajer: Alchemist of the Surreal

번역글 출처:

http://www.lectrice.net/alice/out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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