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씨네필을 향한 정열의 폭주열차 * 비고 : 시끄럼

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11
    지얀, 연인과 희생양, 바그다드대학 학생작품(9)
    뎡야핑
  2. 2004/11/05
    매음굴에서 태어나(3)
    뎡야핑
  3. 2004/10/29
    삼각산을 지키는 사람들, 곡선
    뎡야핑
  4. 2004/10/25
    도롱뇽 생명영화제(2)
    뎡야핑

지얀, 연인과 희생양, 바그다드대학 학생작품

시민영상제에서 상영한 작품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재상영할 때 봤담

 

Jiyan(Jiyan 야노 로세비아노 94‘ 35mm 드라마 2002 이라크)

 

이라크군이 쿠르드족의 도시 할라뱌(Halabja)에 생화학 독가스를 살포한지 5년 후, 미국인이 된 디야리(Diyari)는 마을에 남겨진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짓기 위해 고향 할라뱌에 돌아온다. 마을 입구에서 그는 화학전에서 살아남은 오른쪽 뺨에 상처를 입은 열 살짜리 고아 지얀(Jiyan)을 만난다.(영화 줄거리 참조함) 그녀는 그네를 타고 있었다. 아무말도 안 했다.

 

그가 고아원을 지으며 마을에 머무는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들인데 특별한 사건없이 시간 흐름에 따라 88년 쿠르드인들의 생활과 어린이와 어른의 우정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결코 결코 화학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정말 알 것 같다.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 그 말. 이제는 진짜 알 것 같다.

 

쿠르드인들은 지금도 그럴까? 일할 때 노래하는 것이 좋았다.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연인과 희생양(The Lovers : The Victims 카말 바하르 37‘ 다큐 2004 이란)

 

아직도 제목의 의미를 모르겠다. 최근 들어 이란의 에이즈 발병률은 인구 증가율의 3배에 가까우며, 사망자도 4천명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이란의 평범한 시민들, 에이즈 전문가, 의사, 종교 지도자 등을 인터뷰 해 이란 사회에서 에이즈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심각한 에이즈 발병률에 비해 사회의 인식이 형편없다. 동성애만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알려졌는데 그보다 에이즈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 형편없었다.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 중에도 모두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 영화를 본 평화활동가(인지 기자인지 잘 모르겠다-_-) 분의 말씀으로는 이란같이 율법이 엄격한 국가는 법제정도 '코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에이즈 등 코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은 법제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어떤 사회문제가 되든 코란에 근거가 없으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되는 것은 국가가 에이즈 방지를 못한다는데 있는 게 아니고 에이즈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주사 한 대를 100명의 사람들에게 쓴다고 한다. 그 결과 감옥에서 잡범들은 에이즈를 얻어 나온다. 가난해서 성매매를 하는 테헤란 빈민가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대책이 없는 이전에 에이즈 보균자를 끊임없이 늘리고 있는 국가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코란 운운하기 이전에 최소한 형무소에서 주사기는 갈아야 할 것 아닌가.

 

빈민가의 사람들도 남이 버린 주사기를 사용하다가 에이즈가 많이 퍼지는 것 같았다. 울며 후회하는 사람. 죽는 것만이 소원이라는 사람.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 도대체 이를 어째야 하는가.

 

영화가 짧은 것에 비해 여기저기 많은 입장과 상황을 섞어서 보여주어 많이 헛갈렸고 잘못 본 것들도 있을 것이다. 중간에 한 시민이 "에이즈에 걸려도 지금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에이즈가 걸려도 다를바 없는 생활.

 

 

바그다드대학교 예술대학 학생작품(바그다드대학교 예술대학 학생 작품 3편 약 10분씩)


(감독, 시나리오: 바심 쥐하드 17‘10“ 무성영화 드라마 2004 이라크)

약간 애매한 영화였다. 평화나 자유 등을 상징하는 하얀 꽃을 가슴에 꽂은 사람을 테러범이나(정확치 않다 단순한 개인적 보복은 아닌데) 경찰 등이 죽이고 감옥에 가둔다. 감옥에 간 아이는 하야 꽃을 벽에 심어놓는데 우르릉 꽝꽝 천둥번개가 치자 감옥이 열리고 간수는 당황하고 죄수들은 환호하며 뛰쳐나간다. 천둥번개는 설마 미군은 아니겠지? 앞으로 희망을 얘기하는 건가? 그렇다 해도 천둥번개는 별반 감흥을 주지 않는다. 소극적으로 남이 뭔가 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전쟁의 그늘(디야우 칼리드 12‘25“ 다큐+드라마 2004 이라크)

어떤 남자의 자살, 이라크인들의 생활. 다큐와 드라마가 섞인 것은 재미있었다.


빗장(4‘27“ 드라마 2004 이라크)
빗장을 때려 부숴라!!!

 

영상운동이 시작단계라고 한다. 언젠가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매음굴에서 태어나

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캘거타의 홍등가 ‘소나가키’에는 성노동자여성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살고있다.

 

 

어린이는 나란의 보배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웃기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나라따위 아무려면 어떠리. '어린이는 지구의 보배' '어린이는 어른의 보배' '어린이는 나의 보배' 아무 말이나 넣어도 된다. 어린이는 보배다. 빛난다. 어린이가 최고다.

 

이곳 인도의 매음굴은 척 봐도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다. 성노동자여성들은 이 안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매음을 딸에게 물려 주며 살고 있다. 그들이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대체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나가지도 않고, 아무도 잘 다니라고 하지도 않는다. 돈을 벌어오라고 하긴 한다. 어느 사회나 그렇지만 가난은 대물림된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진 작가 자나 브리스키(감독 중 한 명)는 이 곳에 몇 년간 거주하며 아이들에게 사진찍기를 가르친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이 연극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감정을 순화시키듯이 이 아이들은 사진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이고 상상력을 키워 즐거운 생활을 한다. 그리고 기숙 학교에 갈 수 있는, 사진전을 열러 외국에 나갈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잡게 된다. 잘 모르지만 매스컴을 많이 탔으니까 이제 후원을 많이 받지 않을까? 영화 끝날 때 결국 소녀의 입학을 반대하던 어머니가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그들 중 몇은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특히 아비지드는 관찰력, 재능을 인정받았다.

 

아비지드의 감수성이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관객들 모두 우와~ 그러면서 봤다. 그 친구들도 다 아비지드가 가장 잘 찍는다고 꼽더라.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많이 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이사람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괴로워도 이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비슷한 훨씬 멋진 말도 했다. 타고난 통찰력이 뛰어난 것 같고 일찍 철들어 버린 것도 같다. 영화를 찍고 있던 도중 아비지드는 학교에 가고 외국에 나갈 소중한 기회를 잡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포주가 불을 질렀다고.

그래서 아비지드는 비관적인 태도로 사진을 거부하다가 힘든 과정을 거쳐 비자가 통과되자 다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아비지드가 어린이라서 다행이다랄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는 어린이. 고통에서 완전히는 불가능해도 자유로울 수 있는 어린이.

 

영화가 좋았다.

인디다큐 홈 영화소개란에 걸린 사진이 사진교실 출신의 10명 정도 되는 단체사진이었으면 좋았을 걸. 그 뒤로 그들의 길은 각자 다르지만 사진 속에서 환하고 즐거운 모습은, 그때만은 모두 행복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수 있는 어린이들. 나는 어린이들이 너무 좋다. 그러나 학교에 못 가고 고모한테 붙들려 결국은 매음을 하게 될 아이와 학교에 갔지만 엄마에 의해 퇴학한 걔네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소나가키의 다른 수많은 어린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벗어나고 싶다는데, 방법이 없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뻔한 질문을 왜 하고 있냐.


아아 위에 내가 써놓은 사진. 2005년 여성영화제에서 재상영했기에 구해올 수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