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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0
    이스라엘산 오렌지가 들어간 음료수?!(6)
    뎡야핑
  2. 2009/03/05
    권리가 없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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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2/27
    점령의 맛
    뎡야핑
  4. 2009/02/07
    "쏘지 마세요! 우린 비무장한 민간인입니다!"(2)
    뎡야핑

이스라엘산 오렌지가 들어간 음료수?!

 

원산지 확인하고 먹읍시다!!
이스라엘산 오렌지가 들어간 음료수는 뭐가 있을까요?
우리가 먹은 오렌지 쥬스가 이스라엘인들을 살찌우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점령할 힘을 주는 건 아닐까요?

3/30~4/4 6일간은 이스라엘 대한 투자금지와 경제 제재 조처를 촉구하기 위한 국제 행동의 날입니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깨부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해요!!

+ 더 많은 정보는 이스라엘산 원료가 들어간 음료(09.2.5 최종업데)를 참고해 주세요.



정보 게시도 늦었지만... 저거 만드는데 한참 걸렸다.

저거 만드는 거는 잠깐이지만... 저거를 만들기 위해 버린 것들...

오렌지에서 핏물이 빠져나오는.. 그런 무서운 걸 그려봤는데 무섭고 촌스럽고..;

그래서 그냥 오렌지에서 핏물 흐르게 안 하고(으아 생각만 해도 무섭) 그냥 피튀긴 바탕으로 했는데

피를 너무 못 그려서 웹서핑으로 피를 잘 찾아내어 합성했는데

실수로 중간에 하얀 바탕이 되었더니... 이게 훨씬 낫잖아...;ㅅ;

 

피를 그리기 위한 나의 노력은 무엇이냐

피가 있을 때는 너무 촌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안 촌스럽고 무섭지도 않았는데;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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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없을 권리

 

"학살을 더 당할 수도 있을까요? 대답해요! 그런가요?" 가자의 팔레스타인 대학의 학생 파디(18세)가 소리쳤다. 강당은 학생위원회가 조직한 "여전히 살아있다"는 제목의 2시간짜리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로 붐볐다. 많은 학생들이 잇달아 무대에 올라 자신들이 겪은 방식으로 지난 공격을 이야기했다. 하루하루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 인간학살, 제거, 공포, 폭격, 파괴,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 대해서.

발언자 중 한 명인 마젠은 아즈벳 아베드 라부 지역에서 이스라엘점령군이 했던 짓에 대한 역겨움을 토로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한 집에 한 마을의 가족을 감금했다. 그리고는 아빠 한 명에게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을 골라 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 소년만 살려두고 나머지 모든 가족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이 상처를, 이 고통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죽음과 상처들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공격 기간 동안 모은 사진, 비디오, 오디오, 진술들로 만든 사진들과 아마츄어 짧은 다큐멘터리들 중 하나인 슬라이드 영상은  "Happy New Year? No! Happy New Fear!(행복한 새해? 아니! 공포의 새해!)"를 반복했다. 자원이 부족했고, 오랜 트라우마와 분노, 충격, 실망과 절망의 심리적 여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강건하고 영향력 있고 역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다른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졸업생인 마하는 20009년 12월 27일(*이스라엘 공격시작일) 전에 취업이 되어서 기뻐했다가, 지금은 취업 자리를 잃었다. "나는 화난 사람이다 - 그게 내 새로운 직업이다!" 마하는 공습 첫날 시험을 치르러 가던 대학 동기가 살해당한 것을 이야기하며 슬퍼했다. 몇 사람은 소위 '휴전' 기간 동안 피난했던 집에 돌아간 뒤 집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제 우리 집엔 창문이 아주 많다!" 아파치 로켓이 침실과 부엌, 거실에 뚫은 구멍들의 사진을 보여주던 젊은 여성이 농담을 던졌다.

"미디어에서 '전쟁'이란 단어를 쓰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이것은 집단학살이다! 최소한 '전쟁' 중에는 군사적 균형이라도 있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젊은 남성이 외쳤다. 구급차에 동승했던 한 학생은 엎드려 기도하다가 이마에 카페트를 붙인 채 타 죽은 사람들을 봤다. "때때로 나는 시체가 남잔지, 여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철저히 불탔다." 슬라이드는 가자의 잠들 수 없는 밤들을 공포의 날들로 바꾼 백린탄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제목은 "행복한 새해 2009년: 국제적으로 금지된 축하들". 슬픔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의와 잔혹함의 앞에서도 비극적 현실과 활기찬 회복을 다룬 유머와 풍자의 감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학생일 수 있겠는가? 당신 집이 무너지고, 당신 가족들이 학살당하고, 당신 존재가 통째로 흔들리고 불안스러운데도 책을 읽거나 시험을 치룰 수 있겠는가? 가자의 대학과 학교들은 2009년 1월 18일에 극한의 폭격이 멈춘 며칠 뒤 수업을 재개했다. 가자의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포격이 시작됐을 때 마지막 시험을 치루고 있었다. 누군가는 시험 보러 가는 길이었고, 어린 학생들은 시험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22일간의 공격 전에 3년간 모든 주민들에게 부과된 집단적 감금과 집단적 처벌-포위가 있었다. 한밤중에 촛불 아래에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의 학생들은 전기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공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가자의 석유 위기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학교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없다.

"내 학생들에게 시험을 내 줄 수 없었다. 시험으로 학생들의 슬픔을 어찌 마주하겠는가? 나 자신의 슬픔만으로도 시험지를 만들 수가 없다..." 한 교수의 말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자 했던 학생들은 장래 희망 리스트에서 그 꿈을 지우고 있다. 인간의 권리의 영역에서 또다른 권리가 위반되고 있다. 인간의 권리라는 문화에서 생산되는 모든 권리는 우리의 눈 앞에서 위반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문과 국제인도법, 그리고 비슷한 다른 협약과 규약, 성명들은 "아름답게" 들리지만 다른 곳에서는 적용되는 것 같아도, 가자에서는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박탈당했다.


2009년 3월 2일, 나탈리
http://gaza08.blogspot.com/2009/03/natalie-abou-shakra-right-to-no-righ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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