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선데이


 

하... 핏빛 일요일. 영화는 각종 다큐멘터리와 책을 본 내게 새로운 충격을 주진 않았다. 그러나 그 흔들리는 영상에 시위 현장에 있는 것만 같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최원택님의 평을 읽으니 더더욱 무섭다. "나도 가끔 시위나 집회 현장에 나가는데, 경찰이 발포한다면 어떻겠는가-" 누구를 때리는 것만 봐도 머리꼭지가 돌아버리는데, 총질을 한다고? 내 사촌을 죽였다고 절규하며 돌을 던지다 끝내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마는 젊은 애가 남같지가 않다. 너무 무섭다.

 

음.. 영화에 대한, 그리고 아일랜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조금 오해하고 보았는데, 사건의 장소 데리시는 북아일랜드이고, 내가 알기로 신교도가 대다수인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로 투표를 한 지역이다.(확인해 보지 않는 나의 게으름이여!) IRA는 계속 무력투쟁을 한 모양인데, 평화행진으로 시민권 획득 등을 원하는 세력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그런데 걷기만 하는 평화 집회에, 영국군은 이곳에서의 집회는 모두 불법이라며 공수부대까지 동원해 온 마을 곳곳에 총을 겨누고 있고 불안해 하면서도 모인 청중의 힘으로 이들은 행진을 한다.

 

내가 주의깊게 본 것은 공수부대 대원들이 흥분하는 거였다. 음. 높은 장군 대가리들은, 오히려, 현장에 있지 않고 지휘부에 있어서 그 광기에 물들지는 않은 것 같다. 공수부대원들은 발포명령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엄청나게 화를 내다가 결국은 발포해 버린다. 평화시위대한테, 다 알면서, 어차피 저 놈들은 다 테러리스트야라면서. 저 놈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 내가 죽는다. 여기에 인간은 없고 집념만 있다. 죽여 버리고 살아남겠다는 집념. 공수부대의 적은 사실 전쟁만큼 심각하지도 않다. 상대방은 아무 무기가 없다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하면서도 총질을 멈출 수 없다. 사망자 13명, 부상자 14명. 이에 대해 대가리들 중에 인간적인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하 폭도들을 살해했구나, 수긍하는 사람은 없다. 필요한 조치였다고, 적절한 조치였다는 메아리 뿐이다. 이들이 더 잘 안다. 누구를 죽였는가를. 그러나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사실을 조작하고, 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수여받는다. 아!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눈으로 보면 함께 미친다. 이번 미군의 이라크병사성고문 사건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본 79봄들이란 영화에서 배트남전 당시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고 기형적으로 조형물(!)처럼 만들어 놓고 웃지도 않고. 기념 사진 찍는 것이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전쟁에 나가는 미군들은 다 미친놈일까? 양심도 없는 개새끼들일까? 공포심을 마비시키고 미쳐 버린다. 아아 지옥의 묵시록, 그것이 지옥이다.

 

피의 일요일, 이름부터 러시아 피의 일요일과 비슷하다. 상황도 광주보다는 러시아가 가깝다. 뭐 우리 나라니까 광주를 들먹이겠지만. 광주는 유태인 학살이 가깝지.. 뭐 그냥 그렇다고.

나도 보면서 임철우의 <봄날>을 많이 생각했다. 봄날이 굉장히 충격적인 게, 중심적인 등장 인물들 다 죽는다. 여러 삶의 형식이 있고 갈등도 존재했는데 깡그리 소멸당한다. 오중사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아아 슬프다. 그러고보니 강도만 다를 뿐 얼마 전 부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부안에 한 번도 안 갔는데...

 

전쟁과 학살에 관한 영화와 책들은 참 많다. 볼 때마다 분노한다. 이 영화에서 약간 차별화되려다 만 것이 인간적 숭고함이 없을라다가 막판에 쫌 있었는데 그런 말들은 없는 게 나았을 듯 하다. 뭐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재단할 생각은 없다. 그냥 이런 절대적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적 숭고함이 나는 좀 무섭다. 그것도 반미친 상태같아서... 정확한 건 아니고.. 그리고 이 영화는 블러디 선데이를 다룬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사건에 30년이나 지나서 만들 수 있었는가. 광주를 직접 다룬 영화도 아직 없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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