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소녀

  • 등록일
    2008/03/13 13:15
  • 수정일
    2008/03/13 13:15
  • 분류
    추억팔이
아무래도 최초의 소녀는 7살 때 단짝친구일지도 모르지만 일곱살때는 동물이었으니까. 잘 기억도 안 남.

내 최초의 소녀는 초딩 3, 4, 6년을 같은 반 단짝으로 보낸 김머머다. 옛날에는 눈크고 쌍꺼풀 진 여자애들만 이쁘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일반인에게 미녀로 추앙되진 않았지만 내눈에는 제일 예뻤다. 얼굴이 작고 희고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키가 크고 어린이인데 가슴도 크고. 지금 생각해도 이쁘다.

초3 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하면 다른 애들은 다 알아도 가만 있는데 나는 첫시간부터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그런 점이 걔 눈에 띄었을 것이다. 어느날 같이 점심먹자고 그러더니 마구 친해졌다.

그 무리가 열 명 조금 넘었는데 그 무리만이 아니라 우리반, 나아가 학교의 여왕이었다. 이미지가 꼭 여왕이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일인자. 오랜 반장 경력 끝에 부회장, 회장까지 걸머쥐며 명실공히 학교의 제일 유명한 아이가 된다.

얘네 집에서 반행사를 위해 뭐 만들기, 우리끼리 프로젝트를 위해 모의하기, 그냥 놀기 등 여러 행사가 추진됐다. 부동산업을 하시는 외할머니랑 엄마랑 셋이 살았는데, 엄마는 무용수라고 항상 미국과 일본을 드나들었고, 애인은 일본인이었고, 집에는 미국과자와 일본 과자 그것도 엄청 예쁘고 신기한 것들이 잔뜩 있었다. 과자 말고 물건도 많았지만 관심없어서 기억 안 남;

007 가방같은 상자에 빼곡히 담겨있던 색색의 과자가 눈에 선하다. 그거 먹으러 아주 걔네 집에 살았다. 집은 굉장히 후졌다. 쓰러져가는 집이었고 푸세식이라서 화장실 갈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거세당한 커다란 개를 키웠는데 항상 짖어댔다. 가난한 것같진 않고 알부자 뭐 그런 것 같다. 학용품이나 옷, 악세사리는 항상 최신의 것으로 최고 많이 소유하고 있었고, 생일에는 중국집 한 채를 통채로 빌려서 잔치했으니까.

생일파티하는 게 너무 부러웠다. 반애들+다른반애들까지 엄청 많은 애들을 초대해서, 항상 선물이 고무다라 한개를 채우고도 넘쳤다.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절대 안 해줬음-_-

둘이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했는데 우리집 무선 전화기를 가지고 내 방에서 통화를 하면 안방에서 온가족이 스피커폰으로 엿듣곤 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그만 좀 엿들으라고 화냈는데 항상 알겠다면서...; 통화내용 지못미. 통화는 주로 내일 머리를 어떻게 하고 옷은 뭘로 무슨 색을 입고 몇 시까지 등교하자라든가 누가 재수없네 누가 좋네 따위였다.

얘를 아는 애들은 누구나 기억할 화장실 똥누기. 보통 최대 4명까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눴지만 아무도 똥 누는 데까지 친구를 데려가지 않았다. 단지 얘만이, 자기 똥눌 때도 친구를 데려 들어갔다. 웃기는 일이지만 똥누면서 비밀 얘기를 많이 했기때문에 내가 제일 많이 들어갔고-_- 별로 좋아하진 않으면서도 애들에겐 나름 명예(?)같은 게 됐다. 걔랑 비밀을 공유한다는. 난 방과후에 공유하는 게 더 좋았찌만;

우리 패거리 중에 얘가 엄청 미워하는 애가 있었다. 어느날 둘이 전화로 얘를 따돌리기로 모의하고 그걸 시작으로 거의 전원을 승승장구 2,3일 정도씩 따돌렸다가 무리에 다시 끼워줬다. 따돌린다는 건 몇 명이 몰려가서 다다다다 몰아세워서 울리고,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 등에 혼자 하게 하는 거.

이 짓을 대대적으로 하다보니 우리에게도 순서가 왔고 특히 나에게 먼저 왔다.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동안 세명에게 둘러쌓여 당했다. 3, 4 교시 미술시간에 외롭게  찰흙을 만지고나니 점심시간에는 애들이 같이 밥먹자고 몰려왔다. 나는 짧게 끝난 거였다. 그러나 인생 최초의 치욕을 맛본 나는 부루투스 니가 감히..라는 억하심정이 들었고 애들을 모집하여 얘를 따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 단 한 명도. 정말로 얘는 여왕이었던 것이다. 얘한테 미움받고 학교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나 혼자 했다. 혼자 가서 다다다다 몰아세우고 울렸다.

아마 나에게만 그런 게 있었겠지 내가 이렇게 해도 얘랑 나랑 틀어지지 않는다는. 그 후 얘랑 내가 권력관계를 얘는 당연 일인자다. 이인자 삼인자 이런 건 없다. 얘만 권력자다. 얘는 남앞에서 나를 욕보이지 않는다. 나는 공중에서의 얘의 권위를 인정한다. 이런 식으로 결말 맺고 그 뒤로 딱 한 번 싸운다. 이때 싸운 것도 다른 애들이 지켜봐서 자존심 때문에 할 수 없이 싸운 거였음;


어린이의 사악함은 장난이 아니다. 얘는 이미 초 1, 2 때 컨닝으로 올백 맞았고, 내 생각엔 나에게 다가온 것도 자기 문제제공용으로 노린 것 같다. 나는 정의로운 얼빠진 어린이라서 그런 건 안 했는데, 나중에 한 번 얘가 다른 애 시험지를 돌리면서 나에게도 보내준다. 보고 베끼라고. 나는 그런 부정을 용서치 않았지만 보긴 봤다; 내가 더 맞아서 안 베꼈지만. 그뒤로는 나에게 보내지 않았다;

같이 문방구에 갔을 때 주인 없는 사이 내 뽀빠이 바지 주머니에 제리포를 열몇개 쑤셔넣은 일이 있다. 나는 문화적 쇼크에 굳었었다. 도둑질 하면 안 되는데. 기껏 훔쳐놓고 가지고 가지도 않아서 내가 다 먹었다. 훔친 젤리포도 맛은 똑같구나...; 얘한테 뭐라고는 안 했는데 그뒤로는 한번도 안 그랬다. 내가 싫어해서 그런 것 같음.

달리기 잘 해서 계주였는데, 달릴 때도 쉬팔쉬팔 막 욕하면서 뛰고... ㅋㅋㅋㅋ 쉬팔거리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가슴과 볼 살이 잊혀지질 않음;

얘가 어떤 이쁘장한 애랑 똑같은 빨간 코트를 입고 온 적이 있다. 최신유행의 엄청 예쁜 뒤집어 입을 수도 있는 거였음. 근데 너무 눈에 띄는 스타일이라 둘이 똑같은 옷 입은 거 너무 눈에 띄었다. 그 이쁘장한 애는 며칠 후 코트를 뒤집어 입고 다니다 가끔만 빨간색으로 입게 된다...;

또 악랄한 게, 얘가 6학년인가 중학생인가 오빠를 좋아할 때 그오빠 사는 동네에 가서 다른 언니들이랑 오빠랑 논 적이 있다. 근데 뭔가 일이 틀어져서 얘는 지가 잘못한 걸 나한테 덮어씌웠다. 그러자 언니들이 그걸 마구 얘한테 추궁했다. 그때 나는 얘 편을 들었다...-ㅁ- 얘가 나한테 그러는 게 분했지만 얘가 당하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 나의 우정...; 항상 남의 탓을 하고 선생님/어른 앞에서 착한 척 하고. 무서운 어린이 ㄷㄷ

얘가 나한테 참 잘해줬는데, 아직도 쇼킹하게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역시 뽀빠이 바지를 입고 의자 위에 올라가 떠들고 있던 내 엉덩이에 뽀뽀를 했었다, 교실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도 못본 듯 했으나 나는 너무 깜짝 놀라고... 왜냐면 바지가 더러웠다고. 내 인생에 당황한 최초의 순간으로 기록됨; 아직도 왜 그랬는지 이해 안 감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이고,  또 반장이라서 우리 엄마가 참 좋아했는데 나중에 놀지도 말라고 하게 된다. 그것만은 억울한 일이었는데.

초4 때 어떤 애 생일파티에서 술 얘기가 나와서 서로 술 마신 적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어디 마셔보자고 술을 사다 마신다. 맥주 한 병...; 그동네에 우리 엄마 가게가 있어서 슈퍼에는 내가 파견된다. 아줌마가 "엄마가 사오라고 하셨니?" 그러는데 거짓말을 못하는 어린이였던 나는 웃으면서 가지간다. 검은 봉다리에 넣어서 뱃속에 숨기고 그집에 들어가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마루에 있는 생일인애 엄마를 무사히 지나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술을 마셨다. 이것을 주도한 사람은 나랑 다른 애 두 명이었고, 이 글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근데 생일인 애가 울어가지구... 너 왜우니; 막 술을 마시는데 얘네 엄마가 문을 열으라고 하셨다. 생일인 애를 황급히 커튼 뒤에 숨기고-ㅁ- 술 치우고 환기하고 문을 열었더니 귀신같은 얼굴의 걔네 엄마가 생일인 애를 찾아 데리고 나가셨다. 싸한 정적의 순간 커튼 뒤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

주모자로 이글의 주인공이 찍히고 나는 엄마에게 망치로 맞을 뻔 하며 얘랑 다시는 놀지 말 것을 선고받는다. 뭐랄까 나는 입에 넣었다가 도저히 삼킬 수가 없어서 뱉어버렸지만(마셔봤다는 건 허세였다) 얘는 입에 넣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엄마가 사건경위를 추궁하며 걔가 그랬냐고 했고 나는 걔가 아니고 여럿이 그랬지만 누군지는 말 안 하고 마치 나는 주모자가 아닌 듯 말했지만 엄마는 걔가 주모자라고 믿어의심치 않고 나중에 걔랑 노는 걸 들켜서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다. 그때. 방망이로 맞는 날 얘가 집밖에 서서 안절부절하며 1층에 사는 우리 할머니한테 가서 은정이 구해달라고 은정이 죽는다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한테 나중에 들음. 아 슬프다ㅜㅜ

고딩때 그 생일인 애와 둘이 이 얘기를 한 번 하게 된다. 내가 왜 걔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나를 포함한 우리 무리가 무서웠고,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었고, 특히 걔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딱히 걔를 찝은 것 같진 않았다. 아무도 걔를 찝지 않았는데 부모들이 찝은 것이다.

중학교 때 나는 무용수라던 얘네 엄마가 환갑잔치에서 한복입고 노래 부르는 걸 목격하고 2차 쇼크에 빠진다. 그랬구나. 뭔가 다 이해가 갔다. 엄마가 그렇게 얘를 이뻐하더니 한 번 틀어졌다고 놀면 죽인다고 한 건 얘네 집에 아빠도 없고 엄마는 무용수같은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서였구나. 갑자기 깨달음.

마지막까지 절친했는데도 중학교 가서 연락을 끊은 것은 엄마가 싫어했고, 엄마가 공부하라고 했고, 나는 학교가 달라지면 친구관계는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얘 말고도 전학 간 애들이 전화오고 편지와도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걸었다. 그냥 그때는 바보였음. 그러나 얘 역시 연락하지 않았다.

중학교 가서 하키를 하며 대단한 날라리가 됐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나중에 아주 나중에 스무살 넘어서 중딩때 친구를 만나 얘기를 들으니 공고에 가서는 그렇게 날리지는 않았고, 친구가 많지 않아서 내 친구가 자기 무리에 끼워줬다고 한다. 그친구가 무서운 여깡이었고 걔랑 같이 놀았다는 걸 나중에나 알게 됐다. (너왜 고딩때 나랑 만날 때는 너 여깡이란 얘기 한마디도 안했니) 그렇게 안 날려도 남자친구가 이 지역을 잡고 있는 조폭 부두목으로 현재 감옥에 가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정말 다른 세계 이야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건 고딩 때 11시에 버스정류장에서, 웨스턴 부츠를 신고 쪼그리고 앉아 있던. 둘다 눈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의식하고 있었다. 한점 흐트러짐없이 걷다가 돌아가서 말을 걸어볼까 고민했지만 그냥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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