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정상적인(Awful Normal, 2004)

 

 

여성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며칠 전에 상영회가 있어서 수많은 인파를 제치고 당당히 보았다!!! 사실은 당당히 본 것은 아늼..;;

 

확실히 본인이 자기 얘기하는 거랑 남 얘기하는 거랑 다르다. 아니 뭐 사람에 따라 다른 건지도... 나는 그 이상하게 음악 쓰는 게 너무 너무 싫더라구. 불쌍하게 보이게 하거나 슬프게 보이는 그런 음악들, 뭐 이미 음악 이전에 불쌍하고 슬프게 보고 있는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어린 시절 아빠 친구한테 성추행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 인간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이만큼만 듣고 대체 찾아가서 무슨 얘길 하는 걸까, 얘기를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지 못해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약간의 성과가 있어서 만나는 남자들을 두려워하진 않게 되었지만 글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한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건가?

 

끔찍한 기억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알고 있지만 그리고 모르는 부분이 클 거라고 짐작도 할 수 있지만 나는 기억과 대면할 용기가 아직은 없다. 난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기억에 당황하고 그리고 다시 삭제하고 살다가 또 튀어나오고 그런 식이다.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하는 감독 자매의 그 용기! 그것만은 확실히 의미가 있지만, 그 용기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를 생각해본다.

 

끔찍하게 정상적인이란 말은 지금은 늙어 쭈그러진 가해자를 보고 자매와 엄마(셋이 찾아간다)가 느끼는 것이다. 그는 아동에게 흥분을 느끼는 이상성욕자라는 그것 외에는 좋은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가해자는 아빠와 엄마의 절친한 친구였던 것. 엄마는 이 사람이 좋아서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줬을 정도였다.

 

그런데 촛점은 이 가해자에게 있지 않다. 자매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우리 아빠는(10년 전에 돌아가심), 어떤 일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해 주었는데, 왜 어째서, 이 인간이 우리를 성추행했을 당시에,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이 인간의 편을 든 걸까? 그 뒤로도 한 번도 우리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은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 때만 우리를 지켜주지 않은 걸까?

 

이 배신감은 아빠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된다. 아빠도 혹시 당신과 같은 이상성욕자였던가? 아빠와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가? 가해자는 아니라고 모른다고만 하는데, 그래서 더욱 스멀스멀 내가 당한 끔찍한 기억의 주변을 기어다니던 아빠에 대한 의심은 가해자와의 면담으로 가해자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약간 해소됨과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면할 용기는 아직 없는 건가... 자매는 잠깐의 면담동안 아빠에 대한 의문을 터뜨리고 그리고 곧 침묵한다.

 

성추행을 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무조건적 사랑때문이었다. 엄마만이 우리 편이 되어 주었다. 아빠 또한 우리 편이었다면,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 지금처럼 성추행범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과연 과거에 지배당했을까?

 

그래서 끔찍하게 정상적인 사람은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다시 아빠에 대한 의문을 무의식적으로 침묵시키는 감독 자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아빠도 당시에 자매를 최선을 다해 지켜줬다면 그것만으로 가해자에 대한 충격이 지워지진 않아도 거기에 지배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가해자를 찾아간 용기라는 것은 이제 진실을 맞닥뜨려도 나는 괜찮다라는 강함에서 나온 게 아니라 아빠에 대한 구멍을 메우고 싶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용기지만 결국은 회피해 버린다. 남자를 못 믿어서 연인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단지 가해자에게 성추행당한 것때문이기보다 그렇게 힘들 때 가장 믿고 있던 아빠가 나를 배신했기 때문 쪽인데 아빠에 대해서는 더 커진 구멍을 숨기고 영화가 끝나 버리니까.

 

그래도 엄마는 자매를 이렇게나 사랑해 주고, 이 어두운 영화에서 즐거움이 느껴질 만큼 셋의 믿음과 사랑이 깊으니까 구멍났어도 괜찮다. 최소인원으로 찍어 특별히 새로운 기법이 없어도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적 힘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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