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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08/09 15:31
  • 수정일
    2005/08/09 15:31
  • 분류
    우울한일기

1학년 때 3학년이었던 지현이 언니를 좋아했다. 보컬에 드럼이었는데 드럼은 솔직히 못 쳤고, 물론 무난하게 쳤지만 잘 친다고는 할 수 없었고 노래는 참 잘 했는데 그 정도 노래 잘 하는 애들은 많으니까. 완벽하게 내 타입이었는데. 당시에 예쁜 친구들은 주변에 많았으므로 언니는 얼굴은 평범하지만 다리가 길고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노래를 잘 했다. 엉덩이가 예쁘고 가슴이 큰 여자가 좋지만 그건 추가사항이지 필수사항은 아닌 것이다.

 

생각도 잘 안 날 정도로 열렬히 좋아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너무 좋았다. 우리 학년은 세 명이었다. 다 나가고 세 명이 남았다. 2학년이 되었다. 학원에 다녀서 조금씩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멤버 구성은 완전 꽝이다. 드럼 두 명에 기타 한 명. 나랑 지영이랑 양보하지 못하고 그냥 드럼 두 명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여자애.. 아 박유미가 기타였다.

 

박유미는 얼굴이 작고 예쁘고 하얀 여자로 보통 여자애들은 이쁜 애들을 좋아하므로 초반에는 인기가 있었다가 나중에 모두에게 미움받는 특이한 애였다. 얘랑 놀다가 다른 애랑 놀다가 그러면서 친구 욕하고..그러니까 친구가 없었다. 얼굴도 예쁜데 왕따,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나랑 금세 친해졌다. 말투에 조금 허영이 있고 모르는 거 아는 척 하는 모습을 가끔 연출했지만 나는 걔를 굉장히 좋아했다. 나를 무척 좋아한 예쁜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더 걔네들을 좋아했다는 생각이 든다.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축제가 가을이니까 여름부터 연습한 것 같지만 부정확.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아마 대충 골랐던 것 같다. 아니다 시간이 헛갈린다. 그래 봄에 탈퇴했다. 그날 무용실에서, 우리반 다음 시간이 걔네반인 건지, 걔가 청소하는데에 내가 놀러간 건지, 아무튼 체육복을 입고 내가 발레 흉내를 내서 걔가 웃었던 게 기억난다. 그날 예쁘게 웃고 헤어졌는데 그 날인가 다음날 지현이 언니가 지영이랑 나를 불렀다. 박유미 탈퇴했다고. 그러면서 마구 우리를 혼냈는데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다짜고짜 혼내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박유미가 왜 탈퇴했는지도 모르겠고 탈퇴했어도 지 탓이지 왜 우리한테...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들었는데 고등학교는 상명하복? 그런게 엄격해서 그러면 안 된다. 그 전에는 대들 일이 없어서 안 대든 거지 굳이 위계질서에 복종할 마음은 없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지금 내가 피해잔데 내가 혼나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걔랑은 쌩까게 되었다. 나는 왜 얘기해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걔가 나를 피했을 것이다. 뻥이다.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완전히 틀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복도에서 걔랑 부딪치면 "미친년"이라고 으르렁거리고 걸어갈 정도였다. 내가 2학년 내내 그랬는데 걔는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머리끄댕이를 패대기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욕을 했다. 걔가 대응하면 때리겠다는 생각으로.

 

걔는 내가 자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겠지. 그리고 그 때 생애 최초로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눌려 졸업하고도 몇 년이나 꿈에 걔가 나타나고 그랬다. 친구한테 욕하면서 운 적도 있는 것 같다. 꿈에서는 남자친구를 뺏는 내용이었다. 지현이 언니랑 싸우고 나서 금세 사과했었지만,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지가 잘못한 걸 잘 모른다. 결국 지현이 언니에 대한 마음이 서서히 식어버렸다.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 마음 속에서 박유미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니까 남자친구 뺏기는 꿈이나 꾸지.

 

이제 완전히 걔가 생각도 안 나는 시점에서야 걔가 탈퇴한 이유를 불현듯 이해하게 되었다. 방금.

축제를 얘기하는데 걔는 곡을 연주할 수 있을 실력이 안 되었다. 그걸 막연히 알았지만 시간이 많이 있으니 연습하면 될 거라고 나는 대충 생각했었다. 그리고 걔가 탈퇴하고나서 아마 연주할 수 없어서 탈퇴했을 거란 걸 들었다. 그래서 욕했다. 미친년이 맨날 연습도 안 하더니 그따위로 탈퇴했다고. 아니 왜 우리하고 상의하지도 않고?  그렇지만 걔는 기분이 어땠을까. 몇 달 친다고 기타 실력이 그렇게 향상될 수 있을랑가. 자존심도 센 애였는데. 내 앞에서 항상 웃으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 때 우리 중에 무대에 안 올라가고 싶어한 인간이 누가 있겠어. 팀웍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걔가 겉으로 보여준 모습에만 치중해서. 아 고등학생 박유미에게 미안하다. 지금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이런 옛날 생각을 하면 내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미숙하게 하지 않았을텐데. 먼저 물어봤을텐데. 하긴 예전보다 나아졌을 뿐 지금도 이해심이라면 꽝이다. 그래서 나보다 이해심없는 사람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때려주고 싶다. 나이가 먹을수록 이해심이 좀 생기는 거같다. 좋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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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타운China town, 1974

 

처음 배우와 스탭 이름 나올 때 음악이나 화면 분위기가 마치 영화 끝났다는 듯이.. 웃겼다. 그러다가 존 휴스턴 이름이 마지막에 나왔다. 누구로 나올까? 나이가 대단히 많겠지 싶었는데 나이가 대단히 많은 개악덕자본가로 나왔다. 아니 그냥 자본가라고만 부를 수 없는 초개념 변태 깡깡이 할아범으로 나왔다.

 

2시간 넘는 긴 시간을 적당히 긴장한 채 보았다. 가끔씩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좀 지루하지만 명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것을.. 결말마저 훌륭한 것을. 와 화면도 보통 느와르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진짜 70년대 영화를 보는 느낌. 70년대 영화긴 하지만.

 

아. 진짜 좋다. 자세한 비평은 차이나 타운 - 미국 안의 식민성의 확장과 구축  참조;;

나는 탐정의 비애를 엿보고 말았다. 추리를 너무 못 해서 탐정극을 볼 때마다 앞으로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영화가 델고 가는대로 끌려가는 편인데, 그건 딴소리고-_- 탐정은 경찰 출신이어야 한다. 경찰이랑 친분도 이용하고 그때 축적해놓은 정보를 요리할 수도 있고.

 

그리고 경찰보다 더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아니 여기 사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이 지역의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저 건물에 화장실이 몇 개인지 샛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밑에 뭐가 있는지 각종 사건사고 등을 당사자보다 백 배 더 잘 알아야만 한다. 거의 모든 정보를 요리해서 상관없는 것들을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멋있는 존재인 것이다, 탐정은!! 머리속에 이것저것 잔뜩 있다. 오오 멋져. 그러나 차이나 타운 속의 잭 니콜슨은 모든 탐정의 자질을 다 갖추고 온갖 정보를 요리할 수 있지만 체제의 정보력에 비하면 껌도 안 된다. 그래서 파국이 오는 것이다.

 

그물망의 일부를 엿보았지만 그 대가는 대빵 컸다. 몰라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의 탐정의 역할은 체제가 허용한 극히 일부에만 통용되고 금지한 곳에 한 발만 들어서도 참사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아아 탐정들이여.. 궐기하셈;ㅁ;

 

기티스 형사의 트라우마는 반복되는데 두 번의 사건 모두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난다. 탐정으로서 남자로서 절망한 기티스는 이제 기사회생 불가능일 듯;ㅁ; 슬프다. 아아 결말이 쇼킹하다. 차이나 타운이 도대체 뭐간디..하며 보다가 위에 링크한 글 읽고 쪼금 이해했다. 이 영화는 라깡이나 지젝의 이론에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의 창을 깨부수면 안 된다 같은 거? 으음... 읽은지 오래 되서 잘 모르겠노라 제길

 


페이 더너웨이 여사... 눈썹을 밀어버리고 이마에 눈썹 그리신 재치만점의 팜므 파탈

휴우 남녀관계란...///ㅅ//// ㅋㅋ

아 불행해 불행해 꺄아아

개똥같은 짓을 저질르는 것은 모두 "퓨쳐"를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시는 오른쪽의 존 휴스턴 할배.

 백 대 맞으삼... 입모양은 "퓨"다. ㅋㅋ

 

 

결말의 폭발력에 대해 좀더 생각해서 글을 보충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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