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비토 히로미 센세

鳥人 히로미 센세는 그림이 와방 이쁘시다.

 

최고로 좋아라하는 작품은 "소년은 등으로 사랑을 말한다"

왜 등인지 잘 모르겠으나... 연애물은 고딩이 좋다=ㅅ= 이건 대중적인 것 같더라;;

어른들은 징글벨쓰가 마구 울리고... 왜 딴소리램

 

다른 야오이물도 많이 그렇지만 세상의 윤리를 초월한 그 자유로움에 놀랐었다.

형제일지도 모르는 관계를 "그런 건 플랑크톤만큼 미미한 일이야"로 일축해 버리고(저 말 외웠음ㅋ)

이중인격을 병이라며 한 인격을 죽이려 하지 않고 각 인격이 독립된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 뿐이며 사랑보다 섹스를 즐기고 돈을 마구 요구하는 어떤 주인공도

정말 놀라웠다.

 

나에게 깰 수 없는 몇 가지 금기가 있었는데 1. 근친상간은 절대절대 안돼 2.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충분해(일대 일의 신화) 이 두개를 완전히 박살냈다-_-;;

 

기본적으로 만화가 즐겁게 진행이 되어서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것 같다. 패닉을 일으키면서도 너무 재미있게 보는 나를 발견! 여러 번 본 후에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지만... 생각해보니 근친상간은 문화적으로 안 되는 거지 왜 안되냐. 그 역시 일홈 까먹은 함부르크 왕존가-_-? 독일에서 근친결혼으로 병걸려서 다 죽은... 뭐 그런 거만 아니라면, 옛날부터 순수고결한 혈통을 위해 왕족들은 친남매간에 결혼하는 일이 많았고 이슬람인가 아랍인가 불분명하지만 그 문화권에서는 남매간의 결혼도 가능하다는데... 유일한 문제인 저 후손들이 죽을지 모르는 점은 남자 사이에선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구 일대일의 신화는 각자의 삶이 다르니까. 속단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저런 일이 없다. 그렇다고 대체 왜 남한테까지 저걸 강요한단 말인감. 요렇게 작살내 버린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이게 누가 하는 개그더라-_-?)

 

 세 번째 말한 책에서는 거의 준강간에 공갈이라 할 가공할 범죄가 나오지만 되게 웃겼다. 이런 것은 진짜 범죄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하는 바보같은 얘기가 아니고, 외로워도 슬퍼도 너도나도 즐기며 쌍큼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희망찬 삶을 보여준달까... 진짜다-ㅁ-;

 

심각하게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야오이답게 밝고 건전하고 행복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왠지 애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한국에 책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느므느므 섭섭하다.



인터넷 상에 게시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하더라고.

토리비토 히로미 센세는 홈피에 퍼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퍼와서 떡하니 올려놨다=ㅅ=;;

나는 예전에 산드라 비어만 씨의 그림에 반해 전혀 상업적이지 않고 친구들만 방문하는

내 블로그에 그림을 게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었는데(실은 올리고 나서 물었다-_-)

하지 말라!고 답장이 왔었다 쿠구궁~

내가 여기서 올린다고 CIA가 날 잡으러 오겠어? 잡으러 오셈~~ 쿠쿠

라는 악한 마음으로 놔둘 수도 있었으나 지웠다. 그냥

이번에도 자위대가 날 잡아가겠냐... 싶다랄까...-_-;;

나는 저작권에 관심도 없고 좀 싫지만 저작권에 민감한 사람한테는 들어줘야하지 않겠나 싶은뎅

어허 잡소리 길다 그냥 그렇다고. 그래도 올렸다고. 예뻐서 올렸다고.

날 잡아 잡수셈!!!!!

요건 소설 표지를 내가 모은 것-_-;;

개인적으로 야오이물 제목 참 마음에 안 든다. 촌스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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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음굴에서 태어나

출처 : 인디다큐페스티발

 

 

캘거타의 홍등가 ‘소나가키’에는 성노동자여성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살고있다.

 

 

어린이는 나란의 보배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웃기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나라따위 아무려면 어떠리. '어린이는 지구의 보배' '어린이는 어른의 보배' '어린이는 나의 보배' 아무 말이나 넣어도 된다. 어린이는 보배다. 빛난다. 어린이가 최고다.

 

이곳 인도의 매음굴은 척 봐도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다. 성노동자여성들은 이 안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매음을 딸에게 물려 주며 살고 있다. 그들이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대체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나가지도 않고, 아무도 잘 다니라고 하지도 않는다. 돈을 벌어오라고 하긴 한다. 어느 사회나 그렇지만 가난은 대물림된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진 작가 자나 브리스키(감독 중 한 명)는 이 곳에 몇 년간 거주하며 아이들에게 사진찍기를 가르친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이 연극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감정을 순화시키듯이 이 아이들은 사진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이고 상상력을 키워 즐거운 생활을 한다. 그리고 기숙 학교에 갈 수 있는, 사진전을 열러 외국에 나갈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잡게 된다. 잘 모르지만 매스컴을 많이 탔으니까 이제 후원을 많이 받지 않을까? 영화 끝날 때 결국 소녀의 입학을 반대하던 어머니가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그들 중 몇은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특히 아비지드는 관찰력, 재능을 인정받았다.

 

아비지드의 감수성이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관객들 모두 우와~ 그러면서 봤다. 그 친구들도 다 아비지드가 가장 잘 찍는다고 꼽더라.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많이 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이사람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괴로워도 이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비슷한 훨씬 멋진 말도 했다. 타고난 통찰력이 뛰어난 것 같고 일찍 철들어 버린 것도 같다. 영화를 찍고 있던 도중 아비지드는 학교에 가고 외국에 나갈 소중한 기회를 잡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포주가 불을 질렀다고.

그래서 아비지드는 비관적인 태도로 사진을 거부하다가 힘든 과정을 거쳐 비자가 통과되자 다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아비지드가 어린이라서 다행이다랄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는 어린이. 고통에서 완전히는 불가능해도 자유로울 수 있는 어린이.

 

영화가 좋았다.

인디다큐 홈 영화소개란에 걸린 사진이 사진교실 출신의 10명 정도 되는 단체사진이었으면 좋았을 걸. 그 뒤로 그들의 길은 각자 다르지만 사진 속에서 환하고 즐거운 모습은, 그때만은 모두 행복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수 있는 어린이들. 나는 어린이들이 너무 좋다. 그러나 학교에 못 가고 고모한테 붙들려 결국은 매음을 하게 될 아이와 학교에 갔지만 엄마에 의해 퇴학한 걔네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소나가키의 다른 수많은 어린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벗어나고 싶다는데, 방법이 없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뻔한 질문을 왜 하고 있냐.


아아 위에 내가 써놓은 사진. 2005년 여성영화제에서 재상영했기에 구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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