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사북, 고성, 속초 여행

  • 등록일
    2013/03/03 23:31
  • 수정일
    2013/03/04 11:40
  • 분류
    여행

ㅇㅇ 어릴 때 외에 강원도 가 본 일이 별로 없다. 2월에 진보넷 엠티로 사북을, 3월에 언니랑 둘이 가족여행으로 고성, 속초를 1달새 다녀오게 됐으니 이것도 인연인가...는 훼이크고

 

사진은 내일 올리든지 안 올리든지<
 

사북은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사북역 근처의 중국집 '국일 반점'과 사북 머시기 재단이 차려놓은 사북 투쟁 기념관. 정확한 명칭은 아님. 

 

국일 반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중국집이 재야에 뭍혀 있다니, 너무나 아쉬웁다. 내륙임에도 불구하고 냉동해서 팩으로 파는 해산물이 아니라 그냥 멀쩡한 해산물을 쓴다는 점이 1차 놀랍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소문나게 맛있는 중국집에서도 피해가지 못 하는 통조림 죽순, 통조림 버섯의 유혹을 물리치고 생죽순, 생버섯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개똥같은 통조림 죽순이랑 버섯 진짜 퉷퉷퉷 하다못해 죽순은 어디든 통조림인데.. 내가 최고로 꼽은 우리 동네 중국집(::다만 최근 주인과 주방장이 바뀌어 나태한 맛을 내는 평범 이하의 중국집으로 바뀌었다는 데에 애도를 표함. 씨발!! 욕나와!!!! 이 생각만 하면 너무 불행하다 ㅜㅜㅜㅜ 주방장님 어디 가셨나영...ㅜㅜㅜㅜ)에서도 죽순은 통조림을 썼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국물은 재료 맛으로 승부해서 그냥 담백한 맛이었는데, 첫술에 와! 생각보다 맛있다!는 내 감상은 마지막술에 대박이구나로 바뀌어 있었다. 빨리 밥먹어야 해서 아무데나 들어간 건데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대박 사건.. 기대를 접고 한 술 떴다가 대박 맛있어서 마구 먹느라고 사진도 못 찍었네. 하지만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맛있는 건지 어쩐 건지도 모름. 맛 모르면 맛집 찾아댕기지도 마<

 

동료가 먹다 남긴 볶음밥도 조금 맛 보았는데, 고슬고슬하게 밥이 부서지며 불맛도 약간 나게 세고 빠르게 볶은 것이, 볶음밥의 본연에 충실한, 별 다섯개에 별 4개는 줄 수 있는 맛이었다. 짬뽕은 물론 백점 만점에 백점임.

 

이제 여행 얘기... =ㅅ=;;

사북 투쟁 기념관... 정확한 명칭은 기억도 안 나고, 찾아볼 의의도 없다. 사북 무슨 재단이 있길래 내가 뭐 재단은 잘 모르지만 여튼 내가 전혀 모르는 재단이 있었네? 이러고 갔는데. 내가 가자고 해서 갔는데... -_- 씁쓸함을 가득 안고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그냥 그랬다고.......< 나는 [먼지, 사북을 묻다]이란 다큐도 못 봤으니 나중에 그거를 보자. 참고로 갱도 체험할 수 있대서 조지 오웰의 마음을 느껴야지 하면서 갔는데 월~금만 체험할 수 있대!!!!!!! 뭐야?!!! 이해가 토~일에는 오지도 맘....... ㅜㅜ

 

언니하고 삼일절을 이용해서 고성에 가기로 했다. 항상 그렇듯이 아무런 계획 없이 갔다가, 모든 리조트에 방이 없어서 왕난감했다. 가다가 그냥 모텔에서 자자, 하고 모텔에 들러도 다 방이 꽉 찼다고. 대박이었음. 그래서 허름한 모텔에서 3만 5천원 내고 잤는데, 이불은 안 빨아놨어도 방이 넓어서 나는 괜찮았는데 언니가 냄새난다고 개 싫어함. 나도 누군가의 정액이 묻었었을 의자도 찝찝하고 언니에게 차마 말 못한 진짜 정액 부스러기같은 게 이불에 묻어 있는 것도 싫었는데 뭐 죽진 않으니까.<

 

강원도에서도 온천을 할 수 있다니 매우 놀라웠다. 우리 자매 모두 온천을 좋아해서 낮에 통일전망대에 갔다가 온천하러 갔는데 온천은 8시에 폐장. 8시에 갔기 때문에 담날 아침에 가야했다ㅜㅜ 통일전망대는 어릴 때 가보고 처음 가봤는데 이게 뭐야 ㅋㅋ 아무 의미 없어 ㅋㅋ 삼십분마다 입장이 가능하고, 내국인은 8분짜리 안보 비디오를 보라는데 강제는 아닌 것 같았음. 보면서 얘네들은 이런 걸 만들어서 불특정다수에게 틀어대는구나 싶었다 메세지도 애매한데 영상만 잘 빠진 괜찮은 프로파간다.

 

전망대에서 본 해변은 너무 깨끗하고 너무 아름다웠다. 여름에 기회가 된다면 명파 해수욕장에 가보고 싶은데, 아마도 사람이 너무 많겠지. 명파 해수욕장을 비롯 같은 라인의 많은 해수욕장들이 지금은 들어갈 수 없게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어느 호텔 뒷구멍으로 나온 사람들이 해변에서 노는 게 보여서 고운 모래를 밟았다. 물도 끝내주게 깨끗하고 너무 예뻐. 하지만 여름에는 지옥같겠지... -_-

 

그러다 갑자기 말을 탔다. 말을 타니까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다. 그건 생략하고,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즉흥적으로 탄 건데, 너무 좋아서 감동했다. 말 궁뎅이는 포동포동한 게 목에 느껴지는 근육이랑 달랐다. 얼마나 폭신하고 귀엽던지.. 애기 때 타보고 처음 타봤는데.. 진짜 너무 감동했음. 원래 세 바쿠 도는 걸 네 바쿠 돌아주셨다 ㅜㅜ 그 분 직업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 말항해사? -_- 말 타고 달리고 싶냐고 해서 나 혼자 달리라는 줄 알고 어리둥절했는데 고삐를 잡고 막 달려 주심 =ㅅ= 말 타고 싶다 영국 경찰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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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이름은 클래쉬 존. 여자애였음. 나 진짜 레알 좋아서 웃고 있음 ㅋㅋ 너무 좋았어서 이 사진은 꼴보기 싫지가 않다

 

고성의 온천 씬은 향후 몇 년간 개발된다고 한다. 여태까지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선지 고성 온천은 검색해도 관에서 내놓은 자료 외에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밤에 리조트도 온천도 다 퇴짜 맞고 속초 쪽으로 이동하면서 척산 온천장을 찾았는데, 거기는 온천료가 6천원이다. 대박 저렴함. 근데 그냥 목욕탕임. 저렴한 데는 다 그렇긴 한데, 나는 물만 온천이면 되니까, 엄청나게 들어찬 인파로 자리 잡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물이 레알 온천수~~ 숙박은 2인 9만원인가 그랬음. 담에 여기 와서 자고 싶다.

 

이틀째 주요 일정은 설악산 케이블카를 탄다는 거였다. 자매가 등산을 좋아하지만 이번엔 등산을 안 하기로 해서 등산화도 안 챙겼다. 근데 케이블카 타러 가는데 설악산 도착도 전에 차가 너무 막히는 거임. 그래서 차를 주차해 놓고(주차비 5천원) 걸어서 갔는데, 과연 걷는 게 빨랐다. 그나저나 뭔 인간이 이렇게 많아. 설악산 입장권(인당 3천5백) 끊고 가봤더니 케이블카 타려면 3시간 기다리라능... -_- 뭐여. 그래서 할 수 없이 가장 쉽다는 비룡 폭포 코스를 걸었다.

 

눈이 쌓여 있어서 좀 그랬다. 하산하던 세 명이 자빠지는 걸 보았다. 매우 긴장하고 조심해서 위험 코스에선 무사히 다 내려왔는데 평지에서 넘어져서 무릎을 찧었다. 지나가던 커플이 웃었다 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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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가 비룡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물었다 참조<: http://mirror.enha.kr/wiki/안연이%20공자에게%20인을%20물었다

 

 

비룡 폭포 방문자가 매우 적었는데, 다들 내려간 뒤에 자매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마구 사진을 찍었는데 그건 내 회심의 사진이니까 나중에 올려야지. 폭포는 얼어서 그냥 그랬고< 폭포 보러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절벽들, 압도적이라서 너무 무서운데 너무 좋은.. 뭐 이런 감정은 항상 변태같이 느껴진다 나 말고 그 감정 말이야 인간 대부분이 갖는...

 

맛집은 그냥 중박 수준의 곳을 다녔고, 마지막에 속초 중앙시장에서 오징어 순대랑 수수부꾸미 먹은 거 맛있었다. 언니는 닭강정을 사려고 했는데, 대부분 닭강정 집이 40분은 줄을 서야 살 수 있대서 관뒀다. 수수부꾸미도 한참 줄 서서 사왔음. 오징어 순대는 대부분이 냉동이라는데, 그를 입증하듯 냉동해서 진공포장해서 파는 것들이 있었다. 냉동이기 때문에 계란물을 입혀서 부쳐주는데, 검색해서 직접 만든다는 몇 안 되는 집을 찾아가서 샀다. '미라네 집' 033-636-8048 /56-1혼가 그렇다. 다들 딱 떨어지는 숫잔데 전화했더니 여기만 56-1이라 그래서 잘못 말씀하시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56-1이라고 뙇 써있음;; 택배도 된대서 명함도 가져왔다. 나중에 집들이 때 시켜먹어야지..< 현재 2개에 1만원에 팔고 있다. 참 맛있는데 막 기절할 정돈 아니다. 그래도 나는 원래 오징어 순대 참 좋아해서 참 너무 맛있었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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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성 횬힘 우 속초 횬힘

 

고성에서는 녹원 식당이라는 곳을 찾아가 생선모듬찜을, 속초에서는 지나가다 아무 순두부집에 들어가서 황태찜이랑 황태해장국을 먹었음. 순두부가 반찬으로 나오기 때문에 순두부 시키는 것보다 실용적이다< 황태찜에 숯불맛이 나서 맛있었다. 해장국이나 순두부는 미리 해놓는 요리라서 평범했음.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와 김치는 환상적으로 맛있었구.. 막 나 무슨 미식가야 왜 이래

 

별로 가보고 싶은 데가 없어서 2박할 수도 있던 걸 그냥 밤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차가 겁나 막힌다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으나, 언니의 네비가 국도와 민자 고속도로로만 안내해서 톨비로 돈은 깨져도 차 막힘 모르고 집에 빨리 왔다. 네비가 한 번은 역주행을 안내했는데, 언니가 무심코 역주행길로 들어서길래 첨엔 이렇게 달려도 되는 건가? 했다가 내가 이거 역주행 아닌가.. 했더니 정신차리고 차를 돌렸다. 차 돌리자마자 다른 차가 대박 쌩 지나갔다. 둘다 뒤지는 것은 물론 생사람 잡을 뻔 했네 네비 안내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라서, 언니는 네비한테 이년 저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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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 1 - 중고 피아노 마련하기<

결혼 준비하는 얘기를 써볼라고 했다. 상견례 얘기부터.. 상견례 때 우리 아빠가 진짜 개드립치는 바람에 대박 웃겼는데, 이제 와 지난 얘기는 됐고 앞으로의 얘기를 써보자.

 

결혼을 준비하며 사야 할 몇 가지 필수 항목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피아노이다. 관계자들(애인, 언니, 아빠)은 피아노의 피자만 들어도 짜증을 내고 왕 싫어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강행돌파다. 피아노 왕 비싸서 중고로 살 거임. 부평에만 중고 피아노 취급점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우리 민족이 피아노를 참 좋아하는구나 느낀다. 우리 민족끼리...<

 

암튼 나는 왜 다짜고짜 피아노를 굳이 꼭 혼수로 하겠다고 하는가? 평소에 피아노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고, 못이룬 피아니스트의 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 사연인즉 이와 같다. 잘 읽고 반대하지 말도록.

 

다른 무수한 우리 민족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제법 잘 치는 편은 아니었다. 학원에서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해줬던 것도 아니다. 그 일례로 나는 지금도 코드 잘 모름.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줌. 그냥 악보 보면서 무조건 뚱땅뚱땅 마구 쳤다.

 

대부분의 우리 민족들이 아시겠지만은 어린이가 피아노를 배울 때는 개별 어린이의 특성에 맞게가 아니라 뙇 짜여져 있는 정석대로 피아노를 배운다. 바이엘부터.. 잘 기억도 안 남; 나는 하농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궁금했다 뭐 이런 걸 음악이라고 썼을까. 체르니는 우리들의 음악 실력을 생각하며 쉬운 음악부터 어려운 음악까지 작곡한 건지도 궁금했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바하였는데, 플랫이 너무 많아서 플랫을 이렇게 많이 할 거면 거꾸로 샾 몇 개만 달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학원에서 배우는 거는 너무 재미없었다. 학원 애들 외에 다른 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것을 들어본 일도 없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싫어하게 된 것 같다. 가끔 좋은 것도 생겼지만.. 월광곡 칠 때는 나름 빠져들었었고.. 학원에서 일년에 한 번 괜한 대회에 참여시키고 잘했든 못했든 다 상 주는 그런 게 있었는데, 마지막에 즉흥행진곡으로 참여하려고 연습하다 결국 학원을 관두어 무대에서 연주한 일은 없지만, 그걸 연습시키면서 선생이 같은 곡을 연주한 어느 피아니스트를 들려주며 이렇게 치라고 했다. 처음 들어본 남이 치는 피아노에 깜짝 놀랐다. 나는 한 음이면 한 음, 반 음이면 반음, 몇 분 음푠지 맞춰서 쳐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막 치는 거임. 레알 깜놀함.

 

생각해보면 초2땐가 3땐가, 페달에 발도 안 닿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했던 게 무대에 처음으로 선 경험인 것 같다. 머리를 뽀글 파마해서 꽉 쫀매고, 무대 의상으로 엄마가 사준 회색 정장을 입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페달에 닿지 않는 의자에 높이에 처음으로 긴장했던 것 같다. 무대 위의 강렬한 노란 빛때문에 저쪽에서 나를 보는 엄마도, 객석도 안 보였다. 뭘 연주했는지는 까먹었는데, 원래 템포보다 좀 더 빠르게 연주하면서, 중간에 늦출 수가 없어서 끝까지 빠르게 하고 끝내 버렸었다. 잘 하지도 못 하지도 않아서 금상을 받았다.

 

학원에서는 재미없는 경직된 피아노를 배웠지만, 집에서는 지하상가에서 사온 대중가요 악보를 쳐댔다. 한 개에 300원 하다가 500원으로 올랐던 한 곡 한 곡의 악보들. 내는 회사마다 악보가 달랐는데, 흰색 악보를 내던 데를 제일 좋아했다. 거기 거는 많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항상 악보가 복잡해서 음악이 더 퐁성해서 좋았다. 방과 후에 집에서 친구들이랑 피아노를 치며 미친듯이 대중가요를 불렀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른 외국 곡으로는 에버 그린과 원 썸머 나잇이 있다. 원 썸머 나잇은 아직도 좋아하는 노래임 원 썸머 나잇~

 

작곡하는 것도 좋아했다. 악보를 그릴 줄은 몰랐다. 그릴려고 들면 그렸겠지만. 피아노 앞에서 감정을 쏟아부어서 마구 쳐댔다.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뒤로도 그런 습관이 남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머릿속에서 피아노를 쳐대며 이 정도면 음악으로 손색없지 않을까? 하고 악보로 남기려 어떻게든 작곡한 걸 기억하려고 했지만 다음날만 되면 깨끗이 까먹고 새로운 노래를 작곡했다.

 

초등학교 때 처음 피아노가 생겼을 때에는 집구석이 약간 중산층 가정의 냄새를 풍길 때였다. 3층짜리 주택  2층에 살게 된 뒤 넓은 부엌과 집안에서 키우는 커다란 식물들, 아마도 싸구려일 도자기들, 가죽 소파, 각 방에 놓인 침대 등이 기억난다. 구색 맞추기용인지 아이들 교육용인지 아빠가 피아노도 사왔는데, 그때 내가 실망했는지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건반이 가벼운 디지털 피아노. 아마 처음에는 좋았겠지, 드럼 효과도 있고 여러가지 신디사이저 효과가 있어서 혼자 피아노를 쳐도 혼자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건반이 가벼워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둔 뒤로는 무거운 건반을 칠 일도 없어서, 가벼운 건반에 익숙해지다보니 무거운 건반이 힘에 겨워졌다. 그래서 새로 피아노를 배운다던 친척동생에게 줘 버렸다. 가벼운 건반이 지긋지긋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키보드라는 악기를 증오할 지경에 이르렀다. 뭔가 성격이 극단적이라서... -_- 키보드 들어간 음악은 듣기도 싫었다 (근데 스웨이드 좋아함;)

 

그런데 항상 피아노 치고 싶었다. 손가락이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되고, 머릿속에 빼곡했던 악보들이 지워지고, 손이 기억하는 기계적 건반 진행이 불가능해진 뒤에도 계속 치고 싶었다. 대학교 때 한 달인가 두 달인가 동네 재즈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학원에서 뭔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때나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 배웠는데, 서울로 학교 다니자니 자꾸 빼먹어서 관둔 것 같다. 서울은 뭐든 배우려면 인천보다 너무 비싸고.

 

나도 까먹을 만큼 별로 피아노 치고 싶다는 얘기를 안 하고 살았는데 결혼하려고 혼수품 목록을 만들려니 피아노가 생각났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집구석을 단장하고 피아노도 놓을 수 있다....! 1월에 애인이랑 집보러 다니면서 나는 피아노를 어디에 놓을지를 계속 상상했다. 찾는 것보다 좁은 집도, 피아노 놓기 딱인 자리가 있어서 마음에 찼다.

 

그런데 인천에 있는 낡아빠진 빌라에 살게 됐다. 낡아빠졌다의 포인트는 거실에 피아노를 둘 데가 없다는 거다. 어찌 이런 일이.. 매우 분노하고 피아노를 포기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왜냐면 그놈의 집구석.. 아오 설명하기도 짜증나. 암튼 -_- 결국 나는 침실로 쓰려던 공간을 거실처럼 쓰며 거기다 만화책도 피아노도, 티비도 탁자도 다 놓기로 정했다. 

 

여담으로 친환경 부부 코스프레를 위해 자전거 발전기를 놓고 싶었는데 놓을 데가 없어...ㅜㅜ 이건 진짜 부엌이랑 거실에 놔야 하는데. 나중에 이사할 때 반드시 발전기용 자전거를 놓을 수 있는 구조의 집을 골라서 이사하겠다. 이거 못 놓는다니까 애인은 쾌재를 불렀다. 뭐든지 내 맘대로 하기로 해서 뭐든 하지 말라고는 안 하는데 겁나 싫어함 ㅋㅋ 너는 지렁이나 키워 이 자식아... 이 얘기는 다음에...<

 

쓰다 보니 새삼 참 이상하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나에 대해 떠드는 게 재미가 없다. 내가 왜 사교성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사교성 있는 사람들이 하는 꼴을 보니 지 얘기든 지 아는 사람 얘기든 뭐든 화제를 이어나가기 위해 얘기를 열심히 한다는 걸 알고는 나도 그러는 것 뿐이다. 실제로는 남의 얘기 듣는 것 만큼의 재미도 없고, 내 얘기 하면서도 동시에 속으로는 재미가 없다. 물론 백프로 그런 건 아니다만 기본적으로 말야. 예전에는 내 얘기하는 게 고역이였고.. 그러니까,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좋아하는데 내 과거 얘기같은 거. 근데 옛날부터 거침없이 왕사생활도 쓰는 것을 좋아한다니 이제야 이상하다는 걸 깨달음. 어차피 내가 내 얘기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무도 몰랐을텐데.. 말로 하면 재미없는데 쓸 때는 흥에 겹다니 신기한 일이로다.

 

그나저나 이 글은 내용적으로도 아무 상관이 없으되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은< 무연의 음악 듣기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몇 개의 단편.을 읽다가 생각나서 써봤다. 상관 없으므로 트랙백은 걸지 않으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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