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당했다면

  • 등록일
    2005/03/15 07:01
  • 수정일
    2005/03/15 07:01
  • 분류
    마우스일기

핀켈슈타인 책을 읽다가 든 잡생각이다.

 

나는 내가 수치에 무감각하다고 느끼는데, 사망자 2만 명이라고 하면 우와 너무 한다 나쁜 새끼들-이라고 물론 분노는 느끼지만 상당히 얄팍한 분노다.

 

수천명이 다쳤다. 3000명이 고문을 당했다. 어린이 열일곱 명이 살해당했다.

너무나 익숙한 말들이라서 그냥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친구의 발톱이 깨졌다. 정강이를 의자에 부딪혀서 보라색 멍이 들었다. 남자 새끼가 내 친구를 안 좋게 차서 친구가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런 부분에는 어마어마하게 당자의 고통을 실감하게 된다.

 

언제나 구체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설득을 잘 못하지만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특히 상대가 여자라면 감정이입 쪽으로 호소한다. 여자들은 감정이입을 잘 해서 그런 방법이 잘 통한다. 내 방식이 좀 비겁한 것 같아서 요즘은 안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악질적인 감옥에 많이 수감되어 있지만 전혀 그들의 고통을 모르겠다. 그러나

 

아빠가 감옥에 끌려갔다.

언니가 자고 있을 때 우리집이 불도저로 밀려서 언니가 죽었다.

엄마가 군인들한테 끌려가 고문을 당해 실명했다.

등교하던 옆집 초등학생이 어른들의 장난으로 오른팔이 뜯어져 나갔다.

 

괜히 썼다. 속이 울렁거린다 으악 저런 팔레스타인에서 너무나 빈번하여 수치로만 언급되는 일들이 나에게, 내 주변에 일어난다면.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까. 고통을 모를까.

팔레스타인은 너무 멀어서 남의 얘기처럼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도 같다. 뉴스에서 워낙 자주 나오니까. 4명이 죽었다,고 보도해도 나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거긴 전쟁상황이니까 마치 자연스럽다는 듯이? 우와 내가 그랬단 말이냐...

 

사고할 때에는 나를 고통받는 사람들과 등치시켜서는 안 된다. 3자의 시각을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당자의 복수심, 살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옳지는 않지 않은가. 솔직히 요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게시판에 자꾸 이스라엘 사람을 다 죽이라는 이상한 글이 올라와 들어가기도 싫다. 심지어 그 사람은 이스라엘 측에서도 또다시 복수를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의 복수를 긍정하면 상대의 복수 또한 긍정할 수밖에. 이미 원인따위 중요치 않고 살육이나 하자는 건가? 으으 무섭고 짜증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