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히미코, 2006

나름님 감상문 [히미코의 역할]이 좋아서 읽은 날 보러가려다가, 서울 가기 전에 잠깐 들른 집에 만화책이 와 있어서 그거 읽느라고 안 갔었다. 나름님의 글이 영화보다 훨씬 행복하게 씌였다.

 

이 영화는 동성애에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성애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재미없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지루해서 몸을 비틀었다.

 

히미코는 우아하고 위엄있고, 루비는 경박하지만 귀엽고, 또 이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수줍음 많거나 자의식 억눌렸거나 이성애자 할아버지와 다를바 없거나 뭐 그랬다. 그리고 오다기리 죠는 호모와 비호모의 경계를 가르고 모두에게 사랑받아 마땅할 정도로 잘 생겼다.

 

게이 아빠가 부인과 자식을 버려서 자식이 아빠를 증오하다가 이해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은 보이즈러브계열의 만화에서 흔하디 흔하게 등장한다. 조금 수준이 있는 작품에서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세계최고부자인 초특급 잘난 남자가 여자 뺨치게 예쁜 남자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주는 얘기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식상한 내용이다. 야오이 만화가 좀더 일반화되어야 해..

 

폐쇄적 게이 공동체라는 것도 야오이 만화에서는 이미 식상한 설정이다. 다만 이들이 노인이라는 데에서 차별성이 있다면, 이들이 공동체를 유지할 자체적 능력이 전무해 이성애자 커뮤니티에 확고한 자리를 가진 후원자와의 실낱같은 끈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라는 것의 기반은 허약하고 이를 건드리지 않고 슬쩍 지나친다는 점에서 영화가 딱히 새롭지도 않다. 오히려 비겁하다.

영화적 형식은 딱히 기대한 것이 없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부산스럽고 와글와글한 행복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전체적으로 어설펐다. 배우들의 손짓은 어색했고 절대미남자 오다기리 죠는 딱히 연기가 어떻다고 말할 만한 연기없이 생긴 걸로 밀고 나갔다. 가만히 저음의 목소리로 아무얘기나 해도 완전 멋있는 것이다. 영화의 감정선이 섬세하지도 않고 갈등의 고조나 봉합이 설득력있지도 았다. 전혀 몰입할 수 없는 엉성한 영화였다.

 

이렇게 심하게 얘기하는 건, 이런 올바른 소재(?)를 취한 영화일수록 과대평가받으니까, 내가 과소평가해도 될 것 같아서다. 사실은 더 심하게 얘기하고 싶다. 그냥 평범한 영화인데 대단한 영화일 줄 알고 봐서 그렇다.

 

이성애자를 위한 영화라는 의견에 같이 영화본 이성애자 백양이 동의했다. 특히 이성애자 딸 사오리에게 관객이 동화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양은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나랑 만나서 토론하고 메일로 토론하고 그랬다 ㅋ 기억이나 할라나~ 내가 호모를 하도 좋아하니까 조금씩 호모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잘은 모르지만 극장에서 살펴본 다른 이성애자들도 대체로 만족스럽게 본 듯 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건 교육의 결과이다. 동성애에 호의적이거나 아니면 이성애/동성애를 딱히 구분짓지 않게 되는 것도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딱히 평가받을 만한 요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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