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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거르츄

 

인권영화제에서 봤는데 이제 씀.

 

봉제공장 노동자들을 찍은 드라마.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는 싱글맘 노동자를 좋아한다. 작업량이 딸려서 사장에게 이주노동자와 비교당하며 욕먹는 한국노동자는 이주노동자를 약간 미워하다가 싫은놈 피하려다 졈 친해지고, 아이와 함께 셋이 놀러간 놀이공원에서 이주노동자의 고백은 무심히 씹히고, 그새 없어진 아이를 먼저 찾은 이주노동자가 우는 아이를 데려가려는 걸 보고 놀이공원 노동자들은 너뭐냐며 다짜고짜 억류한다. 뒤늦게 나타난 한국노동자의 무서운 혼냄으로 사안은 종료되고 함께 집에 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스토리는 드라마 씨티라고 재밌는 한 회 형식의 케이비에스 드라마 거기에 나올 법한 위험수위를 건드리지 않는 정도의 따뜻한 영화지만 무척 좋았다... 박박 할퀴고 신경이 날서게 하는 걸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다.

 

상상가능해서 충분히 식상할 법한 이야기를 기교없이 빠져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진심일까? 멋내지 않음일까? 대학 졸업작품인 것 같은데 전혀 멋부리지 않은, 그 담담함과 깨끗함(

 

마야 거르츄는 네팔어로 "사랑해요". 무참히 씹히는 고백 장면 마저도 참 좋았다.

 

 

그나저나 영화 카테고리 다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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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한다면 죽음을 주마

  • 등록일
    2008/06/14 00:53
  • 수정일
    2008/06/14 00:53
  • 분류
    마우스일기

죽음을 원한다면 죽음을 주마

1,022 일 하루하루가 우리에겐 이미 죽음이었다. 단결과 연대로 오직 그 죽음에 지지 않기 위한 투혼으로 우린 이 긴 시간을 건너왔다. 돌이켜보면 기륭전자에서 우리들의 시간은 처음부터 죽은 시간이었다. 입사 자체가 불법파견이었으며 정규직조차 출산 휴가 조차 없는 공장에서 비정규직의 처지란 깨진 접시만도 못한 이었다. 제발 잡담 문자해고를 당하고, 몸이 아프거나 집안의 대소사로 해고를 당하는 꼴은 면하기 위해, 노예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린 지난 시간을 죽음을 건 투쟁을 했다.

 

우 리는 더 오랜 기간의 죽음을 끝장내기 위해 1,000전에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결의를 했고, 5월 11일 시청 앞 16미터 조명탑 고공농성을 시작으로 5월 구로역 교통 탑 농성까지 희망을 빛을 발하고 막힌 길을 뚫기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투쟁을 전개했다. 이 투쟁에 동지들의 연대는 강력했고 광범했다. 다행이 사회여론도 우리들의 절박한 처지와 비장한 의지에 공명했다. 그리하여 생산라인을 폐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조합원들이 복직해서 일할 곳이 없다며 노조와의 교섭마저 부정했던 기륭전자를 교섭 석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 위해 신혼의 새댁이 고공을 오르고, 고소공포증의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며 고공을 오르고, 아이 둘의 엄마가 또 고공을 올라 단식 단수의 투쟁을 해야 했다. 그러니 재개된 교섭에 어찌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 지만 교섭의 결과는 한바탕 서툰 비극이 되고 말았다. 회사와 자기의 운명을 건 진정성은 24명의 저승사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투쟁을 시작했을 때 기륭전자는 500명이 넘던 회사였다. 그런데 이제 그 사원이 1/5도 남지 않았고 그 중 부장 차장직 24명 중 1명을 제외한 23명이 메일을 통해 반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1,000일을 넘게 싸워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을 걸고 눈물의 시간, 죽음의 시간을 건너온 여성 노동자들에게 동냥은커녕 쪽박을 깬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을 외면했다고 노동귀족이라 질타했던 저들이다. 그런데 이제 아예 사용자는 수용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하고 있는 기륭전자 중간 관리직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500명 중 4/5를 해고한 엄청난 생존 경쟁력의 힘인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위해 인간과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저버린 사이코패스들의 행각인가. 참으로 잔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 지만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단지 자본의 교활한 술수일 뿐이다. 중간 관리직이 1,000일의 투쟁을 감수하고 회사의 방침을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간 관리자 중 노조에 대한 병적인 적대감을 가진 몇 명을 제외하면 없다. 그 몇 명도 결국 회사의 지침에 의한 과잉 충성일 뿐이다. 그럼으로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이사의 그간의 교섭에 대한 진정성 운운하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시대 가장 간교한 연극이었으며 해결의 책임을 노노간의 갈등으로 돌리고 또 다른 피해자인 중간 관리직들의 등 뒤로 숨는 것은 정말 비열할 뿐 아니라 무능한 경영자임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 리 기륭전자 분회는 최대한의 탄력성을 가지고 교섭을 했다. 그 결과 문구 조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생산라인의 부재 등 경영적 조건도 아니고 비조합원의 감정 때문에 모든 교섭을 결렬시키는 기륭의 사용자들의 모습은 옹색하고 또 비천하기 짝이 없다. 그 만큼 우리에게 더욱 비장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음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우 리는 윤종희 동지가 30미터 고공에서 단식 단수 투쟁을 할 때 피눈물 강을 건너며 결의했다. 윤종희 동지의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죽음을 함께 결의하고 나서자고. 우리는 자본의 동정과 연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섭의 묘를 구경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요 노동자를 1회용 휴지나, 쓰다 버린 물건처럼 여기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인간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은 물론 사용자나 중간 관리자도 인간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제 죽음을 달라면 진짜 죽음을 줄 것이다. 5월 11일 서울시청 고공농성, 5월 26일 구로역 고공농성이 개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투쟁이라면 기륭전자 분회원 전체의 죽음을 주는 투쟁을 전개한다. 그 시작이 오늘이다.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우리의 절박한 입장을 시위하기 위해 우리의 출근표가 있는 수위실 옥상에 올랐다. 또한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우리의 요구의 단호함을 표현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관심과 연대도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또 다시 지지와 연대를 요청한다. 죽음이냐 삶이냐의 길에서 우리는 동지들의 뜨거운 손길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 이명박 대통령과 기륭전자회장 최동렬은 즉각 문제해결에 직접 나서라.

- 기륭전자는 직접운영을 통한 직접고용 정규직화 실시하라.

- 손해배상철회 및 고소고발 상호 취하 하자.

 

2008년 6월 11일

전국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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