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첵

  • 등록일
    2008/06/02 15:45
  • 수정일
    2008/06/02 15:45
  • 분류
    마우스일기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공연 춘천가서 보고 왔었다

일단 단련된 신체에 압도당했다. 이종원이 하던 리복 선전, 그 의자 밟고 넘는 것조차 못하는 내게ㅜㅜ 사진에 잘 안 보이는데 의자 두개를 놓고 그 위에 누워 있는 거다, 공중에 누워있듯이 의자랑 닿은 부분은 극히 일부. 이 자세로 5분도 넘게 있었던 듯. 나는 계속 의자 사이에 판떼기가 있는 건가 궁금했는데 없었다 완전 마술 보는 듯.

춘천가는 기차에서 짧은 희곡 보이첵을 읽었다. 미완성 유작이라서, 연출가들이 완전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 있어서 아직까지 명작인 것 같지, 딱히 대단한 점은 모르겠다는 대화를 나눴다=ㅅ=; 우리가 모를 뿐인 겅미?? 대화 한 개만 써있는 장도 있고 제목없이 이름만 나열된 장도 잔뜩 있고 거친 미완성작이다. 내용은 뭐... 그냥 그래;  마리라는 부인(내연녀?)을 둔 군인 보이첵은 의사의 실험대상이 되어 매일 완두콩 먹고 인간취급 못받으며 돈을 벌고, 상사의 딱까리 노릇하고.. 그래도 유일한 친구가 있고. 근데 마리가 바람을 피우는데 희곡상 돈때매 억지로 그러는 건지 어쩐지는 불분명하지만 전체의도상 그럴 수는 있겠다. 연극 시놉시스에 그렇게 적어놨길래... 돈때문에 그런다고;

결국 보이첵은 마리를 죽인다. 자기도 죽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렇다고 한다

희곡 내용은 딱히 중요하지 않고(나한테) 이 극단은 다다가 예전에도 얘기했던 데다. 몸으로 어떻게 공연을 풀어낼지 궁금했다. 소품은 의자 하나. 몸과 의자만 있어도 무대를 채울 수가 있구나. 많이 보지 못했지만 한국인의 무대들은 대체로 비어 보여서 실망스러웠는데 몇 가지 팔동작만으로 무대를 채워서 신기했다. 무엇보다 의자의 다양한 잠재력이라니... 의자가 감옥이 됐다가 마음이 됐다가 권위가 됐다가 굴종이 됐다가 그런다 물론 인간의 움직임이랑 만나서. 너무 신기하다

극의 재구성에서는 딱히 감흥을 못받았다 나름의 사건순서대로 나가는데 원작보다 더 단조로운 듯... 뭘 앞뒤로 배치해서 그렇게 느꼈는데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아...; 여튼 내용보다도 몸의 흐름이 움직임이 무대가 나를 에워쌌다.

의문이 있다면 왜 모두, 주인공 보이첵마저 같은 단순한옷을 입은 와중에 악대장과 마리(불륜(?)의 두 사람)만이 캐릭터가 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는 거져... 나머지 사람들이야 이 역할 저역할 했다지만 보이첵은 자기 역할만 했는뎅. 사실 바람 피우는 거 외엔 딱히 두 사람의 캐릭터가 두드러지게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단지 사람들이 알아보기 편하라고...가 아닐까라는 상상력 없는 나의 추측 ㄳ

희곡을 읽고는 마리는 뭐야. 이게 뭐야 싶었는데 극에선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 책을 읽으며 화냥년이라는 거냐... 뭐냐 생각했는데 상연 중에도 본인이 화냥년 어쩌고 그러는 게 나온다. 너무나 지나치게 미완성 유작이라 희곡에 대해서 판단 못하겠고 왜 극에서의 마리는 전혀 생각이 안 나지...;




내용적으로는 4월에 다다랑 본 인형극이 더 좋았다. 어쩌다보니 감상을 안 썼는데... 아기장수 우투리라고 아기 주제에 장수라서 임금에게 해가 된다고 살해당하는;ㅅ; 애기 설화가 있는데, 그것을 평화버젼으로, 아름답게 어찌나 잘 그리는지. 놀라웠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저항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음을(폭력/비폭력 저항) 보여주고 남자 아이 원작을 두 아이로 바꾸고. 대부분 젊은 어린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인형극이다. 그 감동이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나네 이렇게 쉽고 다정하게 편하게 평화를 얘기해 주시다뇨... 여러님들에게 무릎을 꿇자. 나와 앙겔과 부처 도합 삼인이 경배를...
생각난 김에 적어봤다;

아직까지 언어와 이성적 사고가 아닌 몸의 감각을 완연히 못느끼겠다. 최대한의 에너지로 최소한을 표현해야 한다는 연극인 다다허의 말을 고이 간직하리. 근데 맞나... 나의 기억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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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도살자Killer or Sheep, 1977



양 도살장에서 일하는 스텐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에 양을 몇 마리나 잡는지 아무런 관심 없이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게 경제적 여유 역시 주어야 한다는 강박증 역시 지니고 있다. 영화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좌절된 삶과 뒷골목 흑인 사회의 가난하고 척박한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고 있다. 빈번한 폭력, 임신한 절름발이 소녀의 모습 등 갑갑한 현실을, 우리 안에 가득 갇혀있다가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의 모습과 교차해 보여준다. 70년대 흑인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2007년 복원 버전은 타임지가 선정한 2007년 최고의 영화 10중 3위로 꼽히기도 했다.

====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퍼옴

이 영화 모라고 말해놔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감동을 자주 받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한 감동이었다. 감동이 크나크기에 뭐라고 적을지 모르겠는 것이다. 뭐 이딴 시덥잖은 소릴... 그래도 진심!!

편수는 극히 적지만 미국인디흑인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까. 생각해보면 미국인디영화의 가난하고 거친 느낌을 좋아하는 거지 딱히 흑인영화는 아니려나 싶기도 한데. 왜 흑인 영화 얘기하려는데 포이즌KIDS(KIDS다 래리 클락 감독의... 착각했어-_-)가 생각나는 거야... 아 또 나만 아는 얘기하고 자빠지고 싶네 ㅇ<-< 참아야지

하긴 내가 사랑하는 세편의 미국인디흑인영화;;;;도 다들 모르는 것들이지 후후후... 이 영화가 세번째인데 후후후후후후후 나도 흑인영화를 찍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이... 근데 백인영화 포이즌도 괜찮았다니까네...;

영화는 저 위의 줄거리보다 훨씬 건조하고 이음새나 매듭에 신경쓰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대단한 영화였다. 영화의 힘은 꼭 비루한 현실의 압도적인 포쓰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문제적인 소재에 대한 영화는 모두 걸작이어야 하쟎겠. 제목에도 양이 나오고 양과의 교차로 갑갑함이 배가 되지만 그런 썩 괜찮은 비유가 그 힘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냐? 글구 내가 느낀 감동이 뭐냐? 말로 풀어낼 재주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공부를 좀 하고 싶긴 한데...

일상에서 어느 지점을 영화에 담을 것인가. 어렵고도 굉장한 일이다. 아아 옛날 영화들이 뭐 이렇게 새로워

지난번에 대감동한 스위트 스윗헐츠 배대애애애쏭의 감독은 아들과 함께 상업영화도 했는데 망한 것 같다; 영화 파일을 못구하겠네 분명 있을텐데 범작이라서 눈에 안 띄는듯.....=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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