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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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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지로운 번역

행인님의 [책을 집어 던지다...] 에 관련된 글.

 

나도 최근에 쓸까말까 하다가 안 썼는데...;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 - 내 젊음의 자서전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 - 내 젊음의 자서전
마르크 샤갈
다빈치, 2004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책이!!!!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

 

사실 샤갈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 모르지만... 옛날에 봤을 땐 색깔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본 그림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런데 서점에서 화집을 보며 이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이야...<하고 똥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책 앞에 샤갈이 "선한 사람이 나쁜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선하지 않다면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한 거야 아오 크로스 그래서 그 책을 안 보고 이 책을 빌렸는데<

 

빌리길 천만다행이다아.

 

당시 한국 샤갈전을 앞두고 빨리 팔려고 급조한 게 여실한. 뭐 이런 책이 다 있냐고. 진짜 번역 믿을 수가 없다. 비문이 말도 못 한다. 나는 아무리 번역 그지같다고 하기로선, 나같은 문외한에게 급격한 분노를 일으킬 만큼 이렇게 대충 만든 거 처음 봤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아니면 내가 잘 모르니까 겸손을 가장하며 "샤갈은 어린아이같은 사람이였나보다" 라며 엉망진창인 부분들을 좋게 읽으려고 했는데

 

읽다보니까 어린아이같아서가 아니라 번역이 그냥 한 번 슥 보고 대충 번역해놓은 바로 그따위, 나의 초벌 번역에도 못 미치는..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더욱더 충격적인 건 이 책에 마지막에 모아놓은 샤갈의 그림 중 <마을 위로>란 그림은, 샤갈의 원본이 아니라 미국 작가의 모사작인데, 그걸 샤갈 거라고 실어놨다. 나도 첨에 몰랐음;;;;; 웹에서 그림 찾다가 알았다 -_- 이 책에는 한국의 샤갈 전 할인 티켓도 들어 있었는데, 그 할인권에도 마을 위로 그림이 제대로 된 게 들어 있는데!!!!

 

얼마나 막 만들면... 어떻게 생각하면 고된 노동 현실을 감안해서 인정해줄 수 있는 걸지도... 근데 세상에 태어나서 첨 본 발번역 책과 틀린 그림의 조합은 엉망진창의 완성이다.

 

쓰다보니 열받아서...;;; 찬찬히 읽으면서 이게 뭐지 의식의 흐름 기법인가...; 라며 열심히 이해하려고 한 내 시간이 아꾸웠다. 샤갈에게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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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 원투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대화책을 읽었다. 슬쩍 본 언니가 희곡 읽냐?

소크라테스의 대화 읽어본 지 참으로 오래 되어 난 이렇게 희곡처럼 쓰여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아주 재미있어서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천천히 본다는 것이 단숨에 읽었다.

알키비아데스랑 소크라테스는 연인 사이로 유명한데 소크라테스가 육체가 아름다운 알키비아데스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스토커였다...=ㅁ=;;;; ㅋㅋㅋㅋ 알키<가 자라며 소년다움을 벗고 어른남자가 되어가니 ㄱ- 그를 추종하던 어른 남자들은 떨어져나가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때서야 그에게 다가간다... 이 중년층 남성... 후후후

책을 읽으니까 둘 사이에 육체 관계는 없었던 거 같다. 쳇... <

19세기에 누구 유명한 사람이 알키비아데스 원투는 위작이라고 단정했고 그게 지금은 대체로 받아들여진댄다. 내가 읽어보니 투는 썩 잘 쓰지 못한 것이 위작같다< 말이랑 생각이 단정치 못하고 좀 늘어지던데.

원의 눈부처 비유가 참 좋았다. 눈이 눈 자신을 들여다보려면 다른 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건 뭐 너무 아름다워;ㅅ; 난 눈부처라는 말이 있는 줄도 몰랐어. 눈부처... 내가 그렸던 앙겔 부처가 떠오르는구나 앙겔부처그림 클릭

개인적 야오이적 망상을 펼치기엔 소크라테스에게 맹공 당하는 알키<가 내랑 너무 비슷해서;ㅅ; 마치 대전 보듯이 알키 이 멍충아!!! 거기서 그렇게 대답하면 돼냐?! 막 그러고 소크라테스 논리의 맹점 찾아내고 그랬다. 나라면 이 대목에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소크라<는 대화의 가능한 방향을 전부 시뮬레이션해놓고 가지 치기 기술을 장난 아니게 발휘해서 결국 자기가 준비해 놓은 이야기로 수렴하게끔 한다. 사냥꾼이야, 헌터다!!!

고대인 소크라<랑 현대인 내가 만나면 내 대답은 분명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현대인 소크라랑 현대인 내가 만나면... 젠장 ㅜㅜ 알키<처럼 바보 멍충이처럼 당하갔구나... 실감하며 젠장... 크세륵세스 자식... 좋은 가문에 좋은 옷에 좋은 교육에  이글이글... 제길... 뭐 이런 마음도 들었다

소크라<의 4주덕 중 지혜, 용기, 정의는 대충< 구비하고 있는데 절제는 동물 수준이다. 나 말여. 나의 적들은 나보다 절제력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보다 약 천배(추산) 가량 절제 있다고. 그래서 참 마음도 찢어질 것 같고 아 나 존나 어리석고ㅜㅜ 찰싹찰싹

정암학당이란 곳 주관(?)으로 이제이북스에서 플라톤 전집이 나오고 있었다. 몰랐어...!! 아주 너무 재미있고 옛날에 읽었던 거 초콤도 기억나지 않으므로 다 읽을 셈이다. 참 혼의 교류를 강조하는 소크라<님은 알키<랑 잤을까 안 잤을까? 혼과 육체를 아울르는 테크닉을 발견해내고 마셨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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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의 고독

왜 야오이를 보면서 잘 쓴 문장을 찾을까. 스스로 의아해서 대놓고 잘 쓴 글을 읽자는 마음으로 아무거나 골랐다. 잘 생각해 보면 라틴 문학은 거의 읽은 게 없다. 왠지 모름

암튼 잘 쓰긴 잘 쓰는구나. 그러나 가끔 마치 바지가 똥꾸멍에 씹혀들어가듯 잘린 부분들은 뭔지 모르겠다. 편집부의 실수로 문장이 한 개씩 빠진 게 열 군데쯤 되는 듯 하다. 이게 실수인지 작가가 원래 그렇게 쓴 건지 잘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잘 얘기하다가 다짜고짜 '그'라고 새로운 사람을 지칭하는 건... 라틴의 습성인가<

 

한 패밀리의 계보에만 집중했지만 토지류의 대하소설을 압축 요약해놓은 듯 하다. 분량이 나름 짧응께. 마콘도라는 지역을 개척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엔디아 이하 부엔디아 가족은 꼭 백 년 동안 흥망하는데 개개인이 구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각인의 삶을 살지만 핏줄에 이어져내려오는 고독감과(남자에게만인 듯 한데 기억 안남) 핏줄끼리 땡기는 근친상간만은 핏속에 계속된다.

 

 제목때문인가 잊을 만 하면 태어나는 고독한 애들때문인가 즐거운 순간이 반짝거리기도 했지만 고독했다. 마지막의 대반전은 특히 그렇다. 책 한 권을 읽으니 백 년의 고독이 느껴진다. 신성한 것도 끝없이 아름다운 것도 없이 단지 고독하기만 하다. 이것은 누구의 고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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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이런 책을 읽었다.

앞부분에 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대해 머저리같은 소리를 해서 나의 신용도를 확 떨어뜨렸지만 그것도 책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다른 책에서 싸이코패스로 지목된 제프리 다머에 대한 동정적인 자세를 봐도 이 저자의 아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가 눈으로 보고 자기가 판단한 것만 믿는 머저리 군단의 대표주자다.

 

그러나 내가 만날 일 없는 많은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내게 자료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생각하는. 인터뷰어는 살인자의 말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고 여러가지 자료를 가지고 그의 범죄를 생각해야 한다. 독자는 저자의 말을 100프로 믿으면 절대 안 되고(특히 다큐멘터리성의 글) 여러가지 자료를 가지고 그의 아집<을 생각해야 한다 ㅋ

 

자본주의식 형법(비-자본주의 사회의 형법은 모름)의 재미있는 점은 자본주의 이후에 격증한 범죄가 자본주의에서 기인함을 인정하지만 범죄의 예방/치유는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사회적인 범죄가 바로 그 사회에 의해 생겨났음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범죄자 개인을 교정하거나 격리/살해하는 것으로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을 쳐다보는 나는 사이코패스의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피해자를 연상하게 된다.

 

자본주의에 원인이 있으면 자본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냐-_-?????????? 이거 당연한 물음 아닌가...

 

 

내가 아주 예전부터 궁금한 것은 같은 상황에 처한 모든 인간이 같은 선택을 강제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각한 학대를 받은 사람 중에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떤 폭력에는 반응하고 어떤 폭력으로부터는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고... 뭐 그런 걸테지만 그러니까 그게 궁금하다.

 

그러면 이것은 획일적으로 모두 자본주의때문이야.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개의 상황에 개개인이 반응하는 것이 다르므로. 그래서 범죄자 개인의 교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다만 반사회적 기질을 발휘(!)하게 하는 풍성한 여건을 제공하는 자본주의가 빠큐라는 점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이 책도 역시 술술 읽히지만... 잔인한 얘기가 잔뜩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살펴봐도 전쟁/고문으로 살인해대는 전쟁만큼 잔인한 범죄는 없다. 머리를 쓸고 신체를 절단하고 시간하고 피를 마신다고 죄질의 끔찍함을 논하지만 전쟁사진을 보면 알 것이다. 좀더 끔찍하다. 연쇄살인자 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인 사람은 100명이 안 되지만...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범죄의 피해가능성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쟁 피해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듯한데 이점에 대해선 차차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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